매일신문

[김병구의 서울 생활, 어떻습니까?] 도상현 위비스 대표

품질 블링블링한데 착한 가격, '지센'이 잘 나가는 비결이죠

▷1962년 대구시 서구 비산3동 출생 ▷대구 서부초
▷1962년 대구시 서구 비산3동 출생 ▷대구 서부초'계성중'계성고 졸업 ▷경북대 경제학과 졸업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 근무 ▷베이직하우스 전무 ▷위비스 대표이사

국내 대표적인 여성 패션브랜드 '지센' 등을 만들어낸 도상현(54) 위비스 대표. 대학 졸업 뒤 영업 경험을 얻기 위해 잠시 패션 관련 업체에 입사했다 상당기간 눌러앉았고, 그 회사에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결국 창업에 나섰다. 창업 이후 그만의 독특한 경영전략으로 짧은 시간에 국내 대표적인 패션회사로 우뚝 세웠다. 그가 생산하는 것은 지불가치보다 사용가치가 큰 상품이다. 고객이 지불하는 돈 이상으로 훨씬 더 사용가치가 높은 고품질 제품을 제공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자이면서도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에 관심이 많다. 대학시절부터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이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삶과 회사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애쓴다. 바로 ▷더불어 살고 ▷행복한 일터를 가꾸고 ▷혁신적 사고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가치는 도 대표의 삶의 가치이기도 하고, 위비스 임직원과 협력업체에도 적용해 함께 추구하려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이미 상당 부분 실현되고 있다. CEO가 행복한 일터, 더불어 사는 회사를 지향하면서 임직원과 매장 직원들이 한 번 입사하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패션업계의 일반적 관행과 달리 그만큼 장기근속자가 많다는 얘기다. 대구 11개 업체를 비롯한 국내 60여 개 협력업체와도 '수요-공급자'나 '원청-하청업체'의 관계가 아니라 상생관계를 더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국내산 고품질 소재를 공급하는 대구 업체들과는 특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도 대표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회사와 매장 직원, 협력업체는 물론 전체 사회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의 발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 정기 후원을 비롯해 연탄배달 봉사, 교육봉사, 필리핀 물품 기부 등 회사 차원의 다양한 활동을 적극 펴고 있다. 도 대표로부터 자신과 회사가 추구하는 삶과 경영가치에 대해 들었다.

-어떻게 자랐나.

▶대구시 서구 비산3동 서부시장 인근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슈퍼마켓을 했는데,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대학에서는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8학기 중 장학금을 7차례 받았기 때문에 4년간 등록금은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포함해 총 100만원 정도였다. 막노동을 비롯한 다양한 알바를 통해 용돈을 벌었다. 부모님의 짐을 덜어 드리려고 애를 많이 썼다.

-대학생활은 어떠했나.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 시절이어서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국내 상황 등을 보면 대학생이 데모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경제 관련 학회에서 동아리활동도 했다. 우리나라 노동 현실에 대한 관심도 컸다. 그래서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복학한 뒤 휴학계를 내고 인천 부평 공장에서 10개월가량 일하기도 했다. 부평에서 내려와 다시 대구3공단에 취업해 노조결성 등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당시 대구 노동계가 내 진정성을 잘 이해해주지 않았다.

나는 학생운동권의 주류는 아니었지만, 한국사회와 계급에 대해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했다.

-기업체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대학 졸업 직후 친구와 함께 서울 서강대 뒤쪽 신수동에서 조명 등 전기제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소규모인데다 품질보증을 받지 못해 영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영업을 비롯한 사업 노하우를 얻기 위해 졸업 이듬해인 1989년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에 친구와 함께 입사했다. 입사 당시 사업 경험만 얻을 요량으로 3개월만 다니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10년을 훌쩍 넘겼다. 주로 LG상사 내 반도패션(현 LF)에서 일했는데, 여기에서의 경험이 이후 패션업체인 베이직하우스를 공동 창업(2000년)하고, 현 위비스를 창립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패션사업은 어떻게 성공했나.

▶베이직하우스 때나 지금이나 고객이 원하는 좋은 품질의 저렴한 상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가치 있고(Valuable) 혁신적인(Innovative)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불가치보다 사용가치가 큰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위비스는 어떻게 성장했나.

▶16년간의 패션분야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위비스를 창립했다. 라이선스와 해외 직수입 브랜드가 만연한 국내 패션시장에서 토종 브랜드인 '지센'(zishen), '컬처콜'(CULTURE CALL), '지스바이'(ZISbuy) 등을 잇따라 출시해 안착시켰다. 특히 '지센'은 출시 3년 만인 2008년 180개 매장에서 연간 매출 900여억원, 최근에는 300여 개 매장에서 연간 매출 1천600여억원을 달성했다. 회사 전체적으로는 현재 직원(매장 포함) 810여 명으로, 370여 개 매장에서 연간 2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 8월에 덴마크 브랜드인 '플라잉 타이거'를 출시했고, 내년에는 국산 골프브랜드인 '볼빅'을 출시할 예정이다. '지센'은 2012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3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 매장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위비스의 차별화와 경쟁력은.

▶영업과 경영철학에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에게 지불가치보다 사용가치가 큰 제품을 내놓고, 임직원들이 능력껏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또 끝없이 상품을 혁신하면서 회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신뢰로 인해 장기근속하는 직원이 많고, 매장 근무자도 10년 이상씩 가는 경우가 많다.

-위비스의 핵심가치는.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기업'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함께 살고(We Live Together) ▷일터가 행복하고(Happy Work Place) ▷가치를 창조하며(Value Creation) ▷혁신적인 사고(Innovative Thinking)를 하는 것이다.

젊을 때부터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적시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했다.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노동과정에서의 소외, 노동성과물 분배로부터의 소외,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소외를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따온 개념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자이지만 생산과 분배 과정에서 고객, 협력업체, 임직원들에게 이 같은 개념을 적용한다면 '좋은 회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뿌듯하고 행복했던 시기는.

▶LG패션에서 '타운젠트' 영업팀장을 하면서 후배들과 같이 열심히 일한 때가 기억에 남는다.

베이직하우스를 공동 창립해 품질 좋은 제품을 내놓고, 고객들이 가격표 자체를 보지 않고 상품을 구매할 때 보람을 많이 느꼈다. 동업을 하던 베이직하우스에서 친구와 결별할 때 마음이 아팠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약이 됐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내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뛰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미래 발전전략과 비전은.

▶지불가치보다 사용가치가 높은 방식으로 고객들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켜주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추구한다. 옷을 만들 때도 원단업체에 대해 공급자와 수요자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공정하게 윈-윈 하고 융'복합하려고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우리 회사의 미래를 결합시키는 것이 미래 전략이다. 패션에 3D프린팅 작업을 적용하고, 마케팅도 공중파에 국한하지 않고 스마트폰 등과 결합하고 있다.

나의 꿈과 비전은 훌륭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을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 사업과 이 조류를 결합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더 사랑받는 훌륭한 브랜드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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