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을 경시하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 고전을 소중하게 읽고 연구해서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내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고전을 읽는 것은 오늘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내일을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대구향교에는 매일 다양한 고전강좌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이성재(86)'완재(84) 형제가 강의하는 사서삼경(四書三經) 강좌는 특히 유명하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이 스타 강사를 만나기 위해 많은 수강생들이 향교로 몰려든다. 지난 5일 만난 두 스타 강사는 우리가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를 이은 부자(父子) 유교 강의
두 형제가 대구향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타계한 선친 때문이다. 두 사람의 아버지 고 이수락 선생은 지난 1980년 대구향교에 유교학회인 홍도(弘道)학원을 창설해 25년간 운영했다. 명륜전문학원(현 성균관대)을 졸업한 이 선생이 고향인 의성으로 내려와 교편을 잡다가 퇴직 후 '유학의 길을 세상에 넓히겠다'는 일념으로 향교에 홍도학원을 만들었다고 아들들은 전한다. 홍도학원은 그동안 수많은 유교 경전 강좌를 마련해 교육하면서 대구향교가 전국 향교 중 가장 활동이 왕성한 곳으로 이름을 날렸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돕기 위해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형 이성재 씨가 방학 때 홍도학원에서 강의한 것이 퇴직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이후 동생인 이완재 박사가 1997년 영남대 철학과 교수직에서 퇴임, 홍도학원으로 오면서 형은 향교 명륜대학으로 교단을 옮겼다. 이렇게 대를 이은 형제의 유교 강의는 시작됐다.
이들 형제의 유교 경전 강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많은 수강생이 몰려들었다. 강의실이었던 향교 소강당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메워졌다. 200여 명이 몰리면서 자리다툼까지 생겼다고 한다.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20대 젊은 한문학도에서부터 80대 퇴임교수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수강하는 인기 강좌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 박사는 "아버님의 유지를 받들어 현재까지 계속 유교 경전 강의를 하고 있다. 좋은 반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쉼 없이 강단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통사상의 본거지는 영남
이성재'완재 형제의 유교 경전 강좌뿐 아니라 대구향교에는 다양한 유교 강의가 매일 열린다. 전국에 200곳이 넘는 향교가 있지만, 대구향교만큼 활발하게 유교 교육 활동이 펼쳐지는 곳은 드물다. 이 박사가 전한 일화. "10여 년 전 퇴계학연구회 이사회에 갔더니, 한 청주대 퇴임교수가 대구향교에서 하는 경전 강의에 관심이 많다고 했어요. 커리큘럼 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더군요. 몇 년 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어서 청주향교에서 강의가 시작됐느냐고 물었더니 수강생이 모이지 않아 시작도 못하고 접었다고 했어요."
이 박사는 대구경북의 유교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상의 본거지가 영남이라는 것. 고유사상(화랑도), 불교사상(원효), 유교사상(퇴계)이 모두 영남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보면 영남이야말로 오륜이 살아있는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영남이 전통사상의 본거지이자 요람으로, 영남유림의 전통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이 박사는 유교 하면 시대 변화에 뒤떨어지는 고리타분한 학문으로 치부하는 현 세태를 개탄한다. 유교는 인간사회의 조화를 추구하는 학문으로, 인간사회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필요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은 우주와 인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유교는 우주와 인간을 유기적으로 보고 그 전체적인 조화를 논하는 학문이지요."
오늘처럼 삶의 규범과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때일수록 '유교 르네상스'가 절실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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