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도움을 받아도 되는지…. 너무 죄스럽습니다."
강선우(가명'45) 씨는 대화 내내 한 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쳐다보는 게 습관이 됐다. 말을 잇지 못하는 강 씨 대신 아내가 입을 열었다. "남편이 목사인데, 목사는 나눠주고 베풀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잖아요. 교회에도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많은데 우리가 이렇게 도움을 받아도 되나 싶은 거죠."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아내는 얘기하다가 문득 눈시울을 붉혔다. 강 씨와 아내는 서로 쳐다보지 못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33㎡ 남짓한 집안 곳곳에는 가족사진이 있다. 사진 속 어렸던 딸과 아들은 대학교 1학년과 고교 3학년이 됐다. 아들, 딸에게 방 한 칸씩 내주고 부부는 방보다 작은 부엌에서 먹고 잔다. "여기는 교회에서 준 사택이에요. 남편의 병이 심해져서 9월 말에 교회를 그만두면 여길 나가야 해요. 파산 상태라 보증금을 빌릴 곳도 없고 대책이 없어요."
◆한꺼번에 들이닥친 병
20년 전부터 당뇨를 앓았던 강 씨는 당뇨를 제외하면 건강을 자신하는 사람이었다. 양팔에 원인 모를 붉은 흉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동네 피부과에서는 단순 피부병이 아니라며 강 씨를 돌려보냈다. 대형병원에서는 간과 신장이 좋지 않은 탓에 요독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팔에 흉터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강 씨는 당뇨에 간경화까지 왔고 신장 기능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당뇨는 눈에 당뇨망막병증을, 신장은 빈혈을 합병증으로 몰고 왔다. 눈앞이 뿌옇게 보였고, 낮에는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빈혈 때문에 걷다가도 눈앞이 핑 돌았다. 당뇨망막병증과 빈혈 모두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 지금은 치료를 중단했다. 4년 전부터 병원 신세를 지면서 늘어난 빚만 3천만원이 넘는다.
강 씨의 간과 신장은 계속해서 나빠질 뿐이다. 나빠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 간'신장 모두 이식수술이 최후의 보루다. 의사는 강 씨의 신장이 2년 내에 고장이 날 것이라 했다. "의사가 9월 말부터는 일을 아예 그만두라더군요. 병 때문에 집에서 쉬다가 교회를 다시 나간 지 1년 만에 일을 못하게 됐습니다."
◆부모를 이해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아빠의 병과 함께했다. 첫째 딸이 태어나자마자 강 씨는 당뇨 진단을 받았고 이후 바로 둘째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빠의 병을 이해했고,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것에 대해 적응했다. 둘 다 학원 한 곳 보내지 않았지만 반에서 줄곧 손꼽히는 성적을 냈다. 그러나 착한 아이들도 사춘기는 있었다. 친구들과 사는 형편이 비교되자 아이들은 이따금 힘들어했다.
특히 4년 전 강 씨에게 여러 병이 겹친 것을 알게 된 중학생 아들은 부모와 크게 다퉜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무작정 실업계 고교로 진학하겠다고 우긴 탓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기에 부모는 아들의 결심이 이해되지 않았다. 인문계 고교를 고집하는 강 씨 부부에게 아들은 "집이 어려우니 기술을 배워서 빨리 취업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을 인문계 고교로 보냈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입니다. 나 때문에 무엇인가를 포기하게 할 수 없어요."
강 씨가 일을 그만두면 생계는 고스란히 아내 몫이 된다. 강 씨의 아내는 재봉틀로 물건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팔아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다. 아내는 당장 사택에서 짐을 빼야 하는 것도 걱정이지만, 아이들마저 생계를 걱정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는 딸은 최근 취업을 빨리 해야겠다며 전공과목을 바꾸겠다고 했다. "착하게 자라준 것도 고마운데, 아이들에게까지 짐을 지워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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