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공자의 자손들이 모였다

"우리 공자님은 대단한 분이셨다. 세상 이치를 터득하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셨고 공의를 위해 사신 분이다. 그러니까 공부, 공동체, 공의, 그야말로 공생의 삶을 사셨지. 추석을 맞아 우리가 정성껏 차례를 올리자." "이건 농담인데요. 혹시 공자님이 공짜 좋아하신 적은 없나요?"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어요. 가족 전체가 해외 여행 가는 경우도 많은데, 차례도 간편하게 지내면 안 될까요? 다른 가족들은 다 신나게 노는데 우리만 궁상떠는 것 같아요." 놀자 말에 쉬자도 거든다. "맞아요. 우리 여자들도 이젠 명절에 쉬고 싶어요. 공자님께 서운한 게 있다면 여자들을 너무 배려하지 않은 것 같아요."

"뭐 그리 말이 많노? 빨리 차례 지내고 묵자." "묵자 형님 말이 맞다. 빨리 끝내고 한판 깔자. 명절에는 뭐니 뭐니 해도 고를 외쳐야 제 맛이다." "고자 너 작년처럼 고스톱 치다 싸우는 것 아니지? 매너가 아주 꽝이야. 판 깔아놓고 싸우기만 해 봐라." "내가 뭐 어쨌다고? 암튼 깔자 누나 말 들을게."

"명절 음식은 너무 힘들어. 기름기 작렬이고 애써 다이어트 한 거 말짱 꽝이야. 난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어야겠다." "빼자 언니, 라면이 더 나쁜 거 몰라? 나물 많이 먹고 걷는 게 최고야." "걷자, 넌 물만 먹어도 살찌는 내 고통을 몰라. 날씬하다고 잘난 체하는 거니?"

"참 한심하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 먹고 노는 타령이나 하고 앉았으니, 두 나라 대빵들이 쌍욕하며 한판 붙자는데 걱정도 안 되는 거야? 전쟁 나면 어떡할 건데. 도대체 정치하는 놈들은 대가리가 비었는지 이따위 세상을 만들어 놓고, 공자님이 보시면 얼마나 답답해하실까?"

"갈자 형님, 그래도 말조심하셔야 합니다. 자칫하면 종북 좌빨 됩니다. 공자님도 인의의 정치를 외치셨지만 누구 하나 귀 기울였나요? 오히려 쫓겨났잖아요. 권력을 쥔 편에 서서 가만히 있는 게 최고예요." "맹자 니가 맹하다는 소리 듣는 게 바로 그런 이유야. 가만있으면 죽어." "조지자 동생, 니가 내 맘을 알아주는구나. 울화통 터지는 세상이다."

"이제 다 그만하고 차례 지내요. 근데 형님 집에 뭐 하나 변변한 게 없네. 냉장고도 좀 새 걸로 바꾸세요. 공장 돌아가는 소리 나요." "사자, 넌 아낄 줄을 몰라. 고쳐서 쓰면 되는데 무조건 사라고 하니." "말자 언니처럼 아무것도 사지 말자 주의면 우리나라 소비 경제 다 망해요."

공자님이 하늘에서 듣다 듣다 한 말씀 하신다.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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