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평소 친분이 있던 작가의 개인전에 전시 서문을 써 준 적이 있다. 그의 작가적 재능과 조형성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그의 작업실로 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쌓여만 있는 작품을 두고 아무리 해도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던 작가의 넋두리가 가슴속에 남았다.
최근 그 작가의 근황을 접해 마음이 씁쓸하다. 더 이상 전시를 하는 것도 버거워했고 생계가 더 중요하다는 뉘앙스가 비쳤다. 당시 전시 서문을 쓰며 가장 고려한 대상은 작가였다. 작가가 자기 작품의 가치를 새삼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때 글을 다시 꺼내 함께 읽고자 한다. 작가에게 다시 한 번 희망을 내보라고.
"도시의 밤은 때론 낮보다 강하다. 때로는 전쟁터 같기도 하고, 탐욕의 대상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생존이데올로기 때문에 몰개성적,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다양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놀이이든, 모방이든 인간심리에 잠재된 것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풍부한 내적 체험과 아름다움에로의 참여에 대한 욕구가 객관화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추상화된 도시의 밤-풍경이다. 작가는 도시의 밤-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 실경을 좇아 그리지만, 결국 작가의 정신에서 창조된 상징성을 지닌 사색적, 내면적 도시풍경화로 완성되었다. 작가만의 세상을 보는 렌즈를 통해 도시풍경 내부에 감춰진 인간 하나하나의 욕망과 심리를 차곡차곡 쫓아가며 문득 작가 자신과도 맞닥뜨리고 있다.
노자의 득의망상(得意忘象)은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뜻을 얻는다는 의미로, 상상력을 무한히 개방시켜 이후 예술의 형상적 사유를 드높이는 효과이다. 작가 역시 어둠이 잠식한 도시의 마천루, 그 빌딩 내부에서 욕망의 성취를 향해 부단하게 움직이는 군상의 모습 그리고 네온불빛으로 조감 되는 거대한 밤-풍경의 형상들에 천착하다 결국 조형의 근원인 색과 패턴을 다시 주목한다.
거시적인 도시형상을 그려내는 듯하지만, 결국 그가 얻고자 하는 '의'(意)는 거대도시의 풍경과 네온에 잠식당해 버린 인간군상의 '심리'이다. 그러한 심리야말로 '진정한 도시의 풍경'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작가만의 '심리지도'를 차분히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즉,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길은 '도시심리지도'에서 열린다." …중략
고행하듯 부단히 수십 가지의 색을 얹으며 작업의 완성도를 차근차근 높여가던 작가가, 검은색 안료로 화면 전체를 덮어버리는 과정을 보며 필자는 허무와 절망, 불안과 초조 속에 고립된 외로운 한 작가의 모습을 보았다. 필자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이렇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는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는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