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다섯 되가 되면 곧 그치고 남을 만큼 취함이 없도록 하라."
조선시대 나라의 큰 곳간 옆에 살던 한 백성이 죽으면서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사연은 이렇다. 한 고을에 농사는 물론 장사도 하지 않고 밤마다 외출해 돌아올 때는 꼭 다섯 되(升)의 쌀을 갖고 오는 백성이 살았다. 수십 년을 그렇게 귀한 쌀밥을 먹었다. 가족 누구에게도 쌀의 행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죽음 직전 아들에게 유언했다. 쌀이 쌓인 마을 창고 몇 번째 기둥 부근 손가락 크기 구멍에 나뭇가지를 넣으면 쌀이 나온다는 수십 년 비밀도 전했다. 그리고 절대 닷 되가 넘지 않도록 경계했다. 아들은 유언을 지켰으나 욕심에 구멍을 크게 뚫어 말(斗)로 꺼냈다. 그러다 마침내 창고지기에 들켜 죽음을 맞았다. 조선조 지배층은 권력과 힘으로 수탈하고 나라 곳간을 털 때 백성도 곳간을 축냈다. 조선 중기 문인 권필의 '창맹설'(倉氓說'곳집 옆의 백성 이야기)의 내용이다.
지금 곳곳에서 나라 곳간을 털거나 사회를 좀먹는 부정부패의 비리가 줄을 잇고 있다. 관공서와 공공기관, 언론사 등 민관(民官) 구분이 없다. 지위 고하도 가리지 않는다. 지위 높고 권세를 가진 곳일수록 부정 단위도 크고 강도도 세다. 학력과 지위, 출신 등 마땅히 내세울 간판과 내흔들 깃발, 믿을만한 '빽'과 힘없는 백성도 부정 유혹에 내몰릴 판이다.
그런데 지방의회 의원들도 국고 축내기에 한몫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등 전국 5곳을 빼면 구금으로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하지도 않으면서도 매달 꼬박꼬박 수백만원의 의정활동비를 챙긴 사례가 드러났다. 이런 경우에는 의정활동비를 주지 않도록 하는 조례를 갖추지 않아서다. 말하자면 범죄로 감옥에 있으면서도 사퇴하기 전까지는 합법적으로 국고를 축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지방의원들의 국고 축내기는 1991년 지방의회 출범 뒤 2006년 1월 의원 유급제 도입부터 본격화됐다.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범죄로 구속된 숱한 지방의원들은 관련 규정이 없는 탓에 매달 수백만원을 챙긴 꼴이다. 헛돈이 곳간에서 줄줄 샌 것과 다름없다.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 모두 나 몰라라 한 결과다.
지난 11일 행정자치부가 더 이상 이런 사례가 없도록 의정활동비 통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보냈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 곳간 터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자정(自淨)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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