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대통령의 건강

미국의 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만 68세에 대통령이 돼 취임 한 달 만에 숨졌다. 장대비가 내리던 취임식 날, 건강을 과시하려고 재킷을 벗은 채 취임연설을 하다가 급성폐렴에 걸려 사망했다. 140년 후인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70세 나이로 4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었던 그를 두고 건강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으나 그는 8년간 성공적으로 임기를 수행했다.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은 올해 92세로 세계에서 제일 나이 많은 대통령이지만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9'11테러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가 휘청거리며 차량에 실려가 건강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폐렴 진단을 받은 그녀는 이어지는 캘리포니아 유세 일정을 취소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진영은 클린턴 후보의 건강을 문제 삼고 나섰다. 클린턴 후보는 내년에 70세가 되며 그녀를 공격하는 트럼프 후보는 오히려 한 살 더 많아 클린턴의 건강 문제를 공격할 처지가 아니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레이건을 제치고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고령의 두 후보는 건강 문제를 두고도 치열한 대결을 벌이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의 건강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73세에 대통령에 취임, 4'19혁명에 의해 하야할 때는 85세였다. 고령의 그는 3'15 부정선거를 방치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후 고독감이 심해지는 등 정신 건강이 약화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경호실장 차지철에 의존하다 다른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당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74세의 고령에 대통령에 취임, 우려를 샀으나 별 탈 없이 직무를 마쳤다. 차기 대선에서 여권의 유력 후보로 떠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내년에 73세가 돼 건강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갖출 수 있다고 보아 대통령 피선거권을 만 40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고령 제한 규정은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나이가 많으면 육체적 건강은 물론이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등 정신적 건강도 약화할 수 있다. 미국에선 클린턴 후보의 건강 문제를 계기로 대선 후보들의 건강 정보를 자세하게 공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건강 문제가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긴 하지만 대통령 후보의 건강은 공적으로 중요한 정보라는 시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검토해 봐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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