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은 패배가 확실해지면 잔존 병력 전원이 무작정 미군 기관총 진지 앞으로 달려들었다. 이른바 '반자이(萬歲) 돌격'이다. 결과는 뻔했다. 전멸이다. 일본 군부는 이를 '옥쇄'(玉碎)라며 미화했지만 미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전투에서 패배가 확실해지면 항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무의미한 죽음을 막는 합리적인 행위기도 하다. 이것이 미군의 전쟁 상식이었다.
그래서 옥쇄 작전은 미국에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인명의 소모에 불과했다. 그리고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가미카제(神風) 특공대가 미군에게 안긴 공포는 이를 잘 말해준다. 대부분 대공포에 격추돼 공격 성공률은 극히 낮았지만,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그 무모함에 미군은 소름이 끼쳤다.
옥쇄는 이를 노린 것이었다. 근대전은 군비(軍備)의 다과(多寡)가 승패를 결정하는 물량전이다. 물량에서 일본은 미국과 상대가 안 된다. 따라서 물량이라는 유형의 전력 이외에 무형의 전력이 필요하다.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돌격 정신이다.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들다 보면 언젠가는 적이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면 어쩌면 승리할 수도 있다. 이것이 당시 일본 군부의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옥쇄는 미국에는 미친 짓이었지만 일본에는 역설적이지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합리적 계산으로는 미국에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남은 선택은 기괴한 정신주의뿐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정신주의를 설계한 인물이 나카시바 스에즈미(中柴末純)란 육군 장교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브레인으로, "살아서 포로의 치욕을 당하지 않고 죽어서 죄화(罪禍)의 오명(汚名)을 남기지 말라"고 한 '전진훈'(戰陣訓) 초안 작성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나카시바는 패전 3개월 뒤인 1945년 11월, 72세로 자연사했다.('미완의 파시즘' 가타야마 모리히데) 옥쇄를 설계한 극단적 정신주의자치고는 너무 밋밋한 죽음이었다.
뉴욕 타임스(NYT)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미친 게 아니라 지나치게 이성적이며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도발은 상대방이 자신을 미치광이로 인식하도록 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말하자면 김정은은 미친 게 아니라 미친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정신 상태가 통제 불능이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과 180도 다른 판단이다. 과연 김정은은 미친 것인가, 미친 척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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