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아닌 두 번이었다. 두 번째가 더 강력했다. 역대 최강이었다. 자연재해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안전지대라고 했는데. 대구경북 사람들이 12일 밤에 느낀 공포는 너무 컸다.
규모 5.1에 이어 5.8까지 덮쳤으니 1994년 미국 LA 일대를 강타한 규모 6.7 지진과는 1의 차이도 나지 않았다. LA 지진에서는 67명이 목숨을 잃었고 9천 명 가까운 부상자가 났다. 당시 미국에서 이 지진을 경험했다는 한 대학교수는 그때 느꼈던 흔들림 강도와 비슷했다고 할 정도였다.
9'12 경주 지진은 TV나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현실이었고 몸으로 느낀 공포였다. 대구는 경주에서 50㎞ 거리에 있다. 흔들림의 강도도 비슷했다. 그러니 북한 핵실험도, 사드 문제도, 협치의 시작이라며 기대를 모은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의 만남도, 검사와 판사에 변호사까지 다 들어 있는 부패 스캔들도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마당인데, 생전 처음 겪는 공포의 경험인데 다른 일을 걱정하는 건 사치였다.
대구는 그나마 나았다. 경주와 울진 등 동해안의 공포는 차원이 달랐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바로 원자력발전소 때문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참상을 아는 이상 느긋할 수 없었다. 정상, 정상, 정상이라고 되뇌었지만 그런 걸 곧이듣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됐을까? 매뉴얼대로라면 그 정도의 지진이 나면 자동으로 가동을 멈춰야 하는데도 정상 가동 중이라고 했으니 '정상'이라는 발표의 신빙성은 떨어졌다. 경주에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까지 있지 않은가.
1천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공포에 떠는데도 서울에서 만드는 공영 방송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다. 재난방송이 아니라 정규방송이 나갔다는 말이다.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던 여름 더위에 귀찮게 삑삑 울어대던 재난문자도 정작 필요한 때는 날아오지 않았다. 안전이 제일이라며 만든 국민안전처의 서버는 다운이 돼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 때 그렇게 귀가 따갑도록 들은 골든 타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고 서울 사람들은 '평온하게' 추석 연휴를 맞고 있었다. 경주 지진의 절반 강도로 서울에 지진이 났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더 화가 치밀었다.
게다가 5년이나 지난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이번 경주 지진의 원인이었다는 보도는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번에 5.8이었으니 규모 6을 넘는 지진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3개월도 안 돼 세 차례나 규모 5를 넘는 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이 원전 걱정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 규모 6.5 이상의 내진설계를 했다고는 하지만 통 안심이 안 된다.
2016년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4기의 절반인 12기를 경북이 품고 있다. 또 울진에 2기가 건설 중이고 영덕도 건설 예정이어서 이것까지 모두 들어서면 경북의 동해안은 그야말로 원전 벨트가 된다. 지금 원전의 전력 분담률이 30%이고 그 절반이 경북에 있으니까 전국 전력 생산의 6분의 1 가까이가 경북 몫이다. 인구는 20분의 1이다. 물론 이 전력은 서울과 수도권이 주요 수요처이다. 서울 사람들은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값싸고 편하게 쓸 줄만 안다. 원전이 있는 동네의 사정은 모른다. 관심거리도 아니다. 일부에서는 돈 몇 푼 더 주지 않느냐고 오히려 야단이다.
그러나 원전 동네 사람들은 다르다. 산 넘고 물 건너 서울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경북에 원전이 많은 것이라고 알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 곧 서울 사람들 안전하고 좋으라고 원전을 떠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12일 밤을 지나고 나서 이들은 '왜 원전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걸까'를 생각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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