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서울 영등포에 김안과 병원을 열었다. 환자들이 밥 먹을 틈도 없이 밀려들었고,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 돈으로 고향 논산에 건양중'고등학교를 세웠고, 이어 남들이 은퇴하는 63세에 건양대학교를 세웠다. 2001년 이래 15년째 이 대학의 총장을 맡고 있다. 1928년생으로 올해 89세, 하지만 생각도 행동도 젊다. 실용성을 앞세운 교육으로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루 1만 보 이상 학교 안팎을 걸으며 학생들과 대화하고 교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건양대학병원이 있는 대전캠퍼스에서 그를 만나 교육사업에 뛰어든 사연과 대학 교육에 대한 그의 특별한 생각을 들었다. 시종 웃음을 섞어가며 한 이야기, 하지만 하나같이 깊이 새겨야 할 귀중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건강검진을 위해 줄을 서 있는 학생들과 마주쳤다. 학생들이 그를 보자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학생을 위한 건강검진, 학생 모두가 총장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학교, 얼마나 많은 대학이 이와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시작한 학교?
김병준: 어떻게 이렇게 젊고 건강하게 사시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김희수: 젊으니 젊게 사는 거다. 100세 안 되면 다 젊은 것 아닌가?(웃음)
김병준: 운동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김희수: 체육관에서 역기도 들고 몸 뒤로 눕히기와 거꾸로 매달리기도 한다. 한 달에 열두세 번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며 하루 1만 보 이상을 걷는다.
김병준: 젊은 학생들하고 같이 지내니 젊어지시는 모양이다. 교육사업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
김희수: 35년 좀 넘었다. 고향 어른들이 찾아와 재정난에 빠진 중학교를 맡아 달라고 했다. 병원 해서 돈을 벌었으니 고향에 그만한 일 좀 하라는 이야기였다. 힘들게 거절했는데 얼마 후 다시 찾아왔다. 어쩌겠나? 아버지 묘가 있는 고향인데…. 게다가 의미 있는 일 같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하는데, 영 잘못한 것 같다.(같이 웃음)
김병준: 하긴 그게 대학을 세우고 운영하는 데까지 갔다.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김희수: 대학도 지역 국회의원 등의 설득에 넘어가는 바람에 이렇게 되어 버렸다. 신경 쓰고 돈 써야 하는 일이 끝도 없다. 괜히 시작해 가지고서는….
김병준: (크게 웃음)
김희수: 법대 나온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일 잘 벌이지 않는다. 어리석은 의사들이나 이러지. 좋은 일 좀 해라 어쩌고 하면 그냥 넘어가 버린다. 인제대, 한림대, 을지대, 차의과대, 가천대, 한서대…. 다 의사들이 세운 대학들이다.
김병준: 공적 가치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크다는 말 아니겠나. 실제로 보람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김희수: 사실은 그렇다. 그러니 이렇게 힘들어도 하고 있는 거다. 고향에 좋은 학교를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는 것, 정말 멋진 일 아니냐? 처음 중학교를 맡을 때도 이런 마음이었다.
김병준: 당연히 열심히 하셨을 것 같다.
김희수: 중학교를 맡았을 때 말인가? 열심히 했다. 학교 건물이 형편없어 새로 지어야 했는데, 당시 벽돌이 시원치 않아 직접 벽돌을 찍어가며 지었다. 화장실을 모두 수세식으로 하고, 교실에는 TV를 달았다. 또 기숙사와 테니스장도 만들었다. 35년도 더 된 세월의 이야기이다. 그때 그런 학교 보기 힘들었다.
김병준: 아이들이 좋아했겠다.
김희수: 시설 하나를 통해서도 학생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실제로 냄새가 나지 않는 화장실이 신기해 그 안에 계속 앉아 있던 학생이 있었다. 학생 하나가 없어져 찾았더니 화장실에 앉아 있었던 거다. 지금도 그 아이 생각이 난다. 뭔지 몰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생각하지 않았겠나.
김병준: 병원 일 하면서 학교를 시작한 것 아닌가?
김희수: 그렇다. 그래서 서울 논산 간을 수없이 오르내렸다. 호남선이라 여러 가지가 불편했다. 차도 자주 없고 느리고. 하지만 학교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내려가면 아이들이 이사장이라고 인사하고…. 참 기분이 좋았다.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김병준: 흡족하지 않은 게 있는 모양이다.
김희수: 이를테면 사립학교라 교사들이 한 학교에 갇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이 약해지고 교육 현장에서의 긴장감도 떨어지게 된다. (웃는 얼굴로 대담자를 가리키며) 그래서 그런지 이런 큰 인물들도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 않고.
◇별의별 일을 다 겪고
김병준: 대학을 세울 때는 더 열정적이었을 것 같다.
김희수: 고생을 많이 했다. 흔히들 정부가 땅이라도 마련해 준 걸로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모두 돈으로 샀다. 그 과정에서 국세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대학을 한다고 하면 땅값이 올라가니까 농장을 한다며 사들였는데, 국세청에서 이를 투기로 본 것이다.
김병준: (웃음) 학교 역사에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할 이야기 같다.
김희수: 그런 일만 있었겠나? 하필이면 그때 주택 200만 호 건설이 시작되었다. 시멘트와 철근 등의 자재와 인력을 제때 구할 수가 없었다. 자잿값과 인건비가 뛰는 것은 당연한 일, 돈도 끝없이 들어갔다. 시작한 걸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병준: 생각난다. 아파트 짓는 데도 모래를 구할 수 없어 염분이 다 빠지지 않은 중국산 바닷모래를 썼다고 해서 시비가 일기도 했다.
김희수: 그렇게 돈이 들어가는데도 돈 받고 교수 채용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사실, 당시만 해도 여기저기서 그런 짓을 했다. 나 역시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 누가 몇천만원 들고 오면 이걸로 시멘트를 얼마나 살 수 있고, 책상을 몇 개나 살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일절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면접을 보러 온 교수 후보자들에게 교통비를 지불했다.
김병준: 그런 것이 쌓여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거다. 돈 받고 교수 채용하면 시멘트야 사겠지만 이후 무슨 체면으로 학교를 끌고 가겠나.
김희수: 내가 생각해도 참 잘한 것 같다. 그때 한 번이라도 먹었으면 계속 먹었을 것 같다(웃음). 그나마 내게 돈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없었다면 어찌 되었겠나.
◇환자도 돈도 쏟아져 들어오고
김병준: 돈 이야기를 하셨으니 돈 번 이야기를 좀 하자. 안과병원이라고 해서 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뭐가 그리 특별했나?
김희수: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등을 한 후 미국 유학을 갔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의사들은 몹시 권위적이었다. 환자에게 반말하는 게 예사였고 응급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밤중에 이 병원 저 병원 문을 두드리다 죽는 수도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아니었다. 의료는 서비스가 생명이었고 환자는 왕이었다.
김병준: 그때 느낀 걸 실천에 옮겼다?
김희수: 귀국 후 개업을 했는데 365일 문을 열었다.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해 밤에도 환자를 보았다. 그랬더니 김안과는 언제 가도 의사가 있고, 또 친절하다는 소문이 났다. 환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었다. 의사 열댓 명이 하루 3천 명의 환자를 보기도 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김병준: 그렇게 번 돈을 교육사업에 쏟아부었다. 가족들은 불평이 없나?
김희수: 마누라 칭찬하기 좀 그렇기는 한데, 이 점에 있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나 몰래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던 모양인데, IMF 때 그 돈을 내어 놓아 요긴하게 썼다. 이자가 28%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만일 빌려 썼더라면 학교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되었겠나.
김병준: 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추어 두었던 돈까지 내어 놓았다?
김희수: 지금도 모자 쓰고 학교 안의 조경 일 등을 거들고 다닌다. 사실 돈이란 게 그렇다. 잠시 내가 맡아 있는 거다. 쌓아 놓아 뭐 하겠나. 국세청에서 오라 가라 할 것이고, 이자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또 오르면 오르는 대로 신경 써야 한다. 제대로 잘 돌려주면 행복해진다.
◇'지옥 같은' 대학
김병준: 30년도 채 안 된 대학이 이렇게 성장을 했다. 졸업생 취업률이나 국가지원사업 획득, 그리고 각종 시험에서의 합격률 등이 모두 상위권에 있다.
김희수: 나는 의사다. 복잡한 교육 이론을 모른다. 오히려 상식으로 한다. 학교와 교수가 학생들을 맡았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것,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것, 그런 상식이다. 흔히들 대학을 상아탑이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용성, 즉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게 우선이다.
김병준: 교수들 입장에서는 실용성보다는 진리 탐구가 우선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김희수: 건양대학에서는 그게 안 통한다. 예컨대 안과 의사는 환자의 눈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의과대학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의사를 길러 내야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4년을 붙들어 두었으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실질적 문제들을 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야 한다.
김병준: 대부분의 대학들이 요즘 와서야 실용성을 강화하고 있다. 교육부의 요구 때문에 마지못해 그러는 경우도 많다. 오래전에 그런 생각으로 대학을 세웠다는 것이 놀랍다.
김희수: 무식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 아닐까? 복잡한 교육 이론 배웠으면 이렇게 하겠나?
김병준: (웃음) 또 하나, 연구보다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을 우선하는 것 같다.
김희수: 맞다. 건양대학은 교육 중심 대학이다. 학생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다. 가르친다는 의미도 그렇다. "나는 강의했으니 그만이다" 하는 교수는 이 대학에서는 곤란하다.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김병준: 무슨 의미인가?
김희수: 영어를 가르치면 영어를 잘하게 만들어야 하고, 토익이나 토플 점수도 잘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의사시험이든 뭐든 시험을 쳐야 하는 경우면 합격시켜야 한다. 취업을 잘할 수 있게 해서 취업률도 높여야 하고.
김병준: 이 대학의 교수가 아닌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김희수: 잘 알고 있다. 안팎에서 욕을 많이 한다. 어떤 교수는 지옥이라 한다.(같이 웃음) 하지만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봐라. 웬만한 지식과 정보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다 얻을 수 있다. 그걸 전달하고 끝나는 게 대학 교육의 본질이 될 수 있겠나.
김병준: 학생들에게도 요구하는 게 많을 것 같다.
김희수: 그렇다. 우선 공부를 빡빡하게 시킨다. 졸업을 하려면 일정 학점을 따는 것은 물론 학교가 정한 특별한 졸업요건을 다 채워야 한다. 영어 성적을 일정 수준 이상 올려야 하고, 정해진 만큼의 책도 읽어 심사를 받아야 한다. 강의실에서는 휴대폰꽂이에 휴대폰을 보관해야 한다. 강의에 집중하라는 거다.
김병준: 꽤나 불평이 있을 것 같다.
김희수: 싫으면 쉽게 졸업하는 학교 가라고 한다. 그 대신, 학교에서 하라는 것 다 했는데도 취업이 안 되면 그동안 받았던 등록금을 돌려주겠다는 자세로 가르친다. 또 학교를 학생들이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볼링장에다 심지어 노래방과 골프연습장까지 있다. 학교 안에서 공부하고 놀고 다 하라는 이야기이다.
김병준: 졸업식을 3일간 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김희수: 총장이 한 사람 한 사람 손잡고 인사하다 보니 그렇게 된다. 하루 600~700명씩 2시간짜리 행사를 3일간 단과대학별로 한다. 헤어지는 정을 나누면서 또 서로 배우고 느끼고 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다른 대학과 달리 졸업식이 졸업식 같다. 참석률도 매우 높다.
김병준: 학생들에게 정을 많이 주는 것 같다.
김희수: 교수들보고도 이야기한다. 학생들을 자식처럼 여기라고. 자식들이면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보살피겠느냐고.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환자들을 부모처럼 생각하라고 한다.
김병준: 괜히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이해가 간다. 그런 생각으로 하나하나 열심히 챙기시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다.
김희수: 정말 괜히 시작했다. 크루즈 여객선 타고 유럽 여행이나 하며 살 걸…. 이 나이에, 휴가도 없이 말이다.
김병준: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할 거다. 오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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