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부가정(偏父家庭)의 가장이다. 14년 동안 아이 둘을 맡아서 지금까지 기르고 있다. 당시 백일이 갓 지난 막내는 키가 나보다 훌쩍 커버린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부부 세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하니 이혼은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현관문을 나가면 저녁에 돌아오기까지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니 사별(死別)도 남의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포기할 테니, 아이만 기르게 해달라고 법정에서 눈물로 호소하는 부모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서로 아이를 양육하지 않겠다며 소송으로 다투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편부가정도 당연히 증가 추세다.
편부가정은 편모가정보다 고립되기 쉽다. 우선, 남성이라는 생물학적인 요소가 아이 양육에 여성보다 훨씬 불리하게 작용한다. 남자가 살림과 육아를 함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가게 되면 육아를 자신의 부모에게 떠넘기거나, 그런 조건이 안 되면 가사 도우미에게 맡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조부모가 육아에 정신적, 경제적으로 시달리게 되고, 그것이 가족 간의 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경제적 여유가 있어 가사 도우미에게 육아를 맡기는 경우에도, 가사 도우미의 양육 태도에 따라 아이는 많은 부작용을 겪게 된다. 만일 남성 혼자 육아를 감당하게 되는 경우는 아이 학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오늘도 아이를 어딘가에 맡기고 생활을 위해 출근을 서두르는 편부가장 아빠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아빠들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직장에서도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이웃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그들의 기막힌 심정을 나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버린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이야기다. 공개수업을 한다며 꼭 참석하라는 가정통신문을 받고 교실에 들어서니 나만 빼고 모두가 엄마들이었다. 수업이 끝나는 동안 선생님의 말씀은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고, 겨울인데도 식은땀만 줄줄 흘리다 왔던 기억이 난다. 운동회 날 '엄마와 함께 포크댄스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딸아이에겐 엄마가 없었기에, 연습을 할 때마다 춤을 추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섭외해서 비용을 드리고 운동회를 마친 적이 있다.
이제 딸아이는 사회적 편견들을 이겨내며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고, 막내 놈은 공부는 못하지만 농구에 흠뻑 빠져서 착하게 자라고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편부의 길이다. 비록 아침저녁으로 한 가지 반찬밖에 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밥투정 한 번 하지 않고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얼마 전 나는 비탈에 선 나무들을 보았는데 비탈에서도 나무들은 곧게 자라고 있었다. 오늘 부는 바람은 편부아빠들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나의 동지인 이 땅의 편부아빠들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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