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3>-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최우수상

삽화 이태형 화가
삽화 이태형 화가

# 사망자 유족의 목소리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유족과 가까운 친척에게 그날의 참상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신혼에 남편을 잃은 청상과 엄마 배 속에 있었던 유복자까지. 유족들은 전국에 뿔뿔이 흩어졌다. 직접 찾고, 전화를 걸었을 때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기둥을 잃고 살아온 유족들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여기에 수록한 나이는 1949년 사건 당시 나이임

춘자야 춘자야! 아버지의 처절한 목소리

일본군 징용에 끌려간 아버지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아버지는 할머니 제사상에 올릴 제수를 마련하고자 하양장에 갔어. 일본에서 같이 고생한 친구가 놀다 가라는 것을 뿌리치고 왔다 하더라고. 할아버지도 편찮으셨으니까.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사랑방에 놀러 가셨어. 나는 동생 둘과 단잠에 빠져 있었지. 집에 불이 붙었다는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어. 엄마는 난 지 삼 개월이 안 된 남동생을 둘러업고, 나와 여동생을 이불에 둘둘 말아 문밖으로 끌어내더군. 우리는 길 건너 최문환 어른 담벼락에 숨었어. 엄마는 물동이로 불타는 지붕과 나락 두지를 향해 마구 물을 뿌려대더라고. 이웃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어. 마을 전체가 불타고 있었으니. 집을 홀랑 태웠어. 위채는 새집이었고, 아래채는 완공 단계였는데….

"무섭지 않았나요?"

"무서웠지. 여동생 옥이와 와들와들 떨었어. 아무도 우리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 엄마는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고."

"기억나는 것이 없는지요?" 전화선을 타고 오는 그녀의 한숨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기억이 생생하지. 춘자야, 춘자야! 아버지의 울부짖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어. 내 이름을 불렀지만, 엄마를 부르는 소리였을 거야. 통상, 부부간 호칭할 때 큰아이 이름을 부르잖아. 춘자야! 절규할 때는 놈들에게 한창 당하고 있었을 것 같애. 고함을 칠 때마다 공비의 칼날은 바람을 가르지 않았을까? 놈들이 물러가고 쓰러진 아버지를 찾았을 때, 아버지는 숨은 놓지 않았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엄마를 향하여, "나는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어린아이들 데리고 살 수 있겠느냐?"

"아이들 데리고 잘 살 테니 걱정 말라"고 했대.

우리가 철이 들고 난 다음 "너희 아버지와 약속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다"며 엄마가 자주 푸념을 늘어놓았어.

"그 뒤 상황은요?"

"우리 집은 홀랑 타버려 피할 곳이 있어야지. 작은집에 갔어. 엄마는 아버지의 주검을 보고, 제정신이 아니었어. 온몸과 얼굴이 칼자국으로 깊이 팼으니. 엄마는 밖으로 흘러내린 아버지의 내장을 배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몇 차례나 실신했다더군. 누군가가 아버지 시신을 모시고 들어오더군. 아버지의 모습을 분명히 봤어. 얼굴에 칼자국이 여러 곳 있었고, 피는 말끔히 닦여진 상태였어. 아버지의 시신을 교회에 안치할 동안 출동한 의료진이 돌봤을 것 같아."

누군가가 맏딸인 나를 보며 "아버지를 불러 보라"고 하더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그때 아버지라 불러 드리지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남아 있어."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에 수화기마저 떨렸다.

"……"

"기막힌 이야기 하나 해 줄까. 그날 저녁 아버지와 함께 손목을 잃은 방차암 어른이 계시잖아. 시신을 수습할 때 손목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하마터면 손목이 바뀐 상태에서 장례를 치를 뻔했어."

"그 뒤의 생활은 어떠했는지요?"

"갈 곳이 없어 김필규 어르신 아랫방에서 더부살이했지. 아버지가 보고 싶어 대나무로 엮은 마룻바닥을 손톱으로 뜯어가며 마구 울었어.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엄청나게 맞았어. 맞는 나의 아픔보다 때리는 엄마의 가슴이 더 쓰라렸을 거야. 그 뒤로 엄마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 새벽기도를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어. 안정을 찾을 무렵, 교회의 누군가가 엄마에게 중매를 서려고 했어. 우리를 두고 도망갈까 봐 여동생과 나는 엄마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졸졸 따라다녔지. 중매쟁이가 우리 집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강짜를 부렸어. 사랑하는 남동생은 나이 여섯에 돌림병인 마마를 앓다 하늘나라에 갔어. 아버지 잃을 때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린 것 같애."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회한이 서려 있다.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어머니를 도와 가계를 꾸렸다. 힘든 농사일을 여인네들이 짓기엔 무척 버거웠으리라. 그녀는 일흔 중반의 나이지만 곱게 늙어가고 있다. 매년 지내는 추모제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1. 사망자 김석수 32세. 장녀 김춘자 7세. 경북 의성

박기옥

1949년 경산 와촌 출생. 모리코트상사 대표. 현 경산문인협회 회장. 수필집 '고쳐 지은 제비집' '소금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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