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신생아 망막증 앓는 하란 양

먹는 것도 기적인데 눈마저 잃는다면…

1㎏대의 미숙아로 태어나 신생아 호흡곤란증
1㎏대의 미숙아로 태어나 신생아 호흡곤란증'망막증을 앓으면서 엄마에게 버려진 하란 양.

대구 수성구 단기 아동보호소에서 마주한 하란(1) 양은 생후 100일이 지난 아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았다. 란이의 몸무게는 4㎏이 간신히 넘는다. 또래 아기들 평균 몸무게의 70% 정도에 불과하다. 아이를 치료했던 칠곡경북대병원 관계자는 "란이가 이 정도 자란 것도 기적"이라고 했다.

3개월 전 미숙아로 너무 일찍 세상의 빛을 본 란이는 신생아 호흡곤란증으로 칠곡경북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란이를 돌봐 줄 부모는 없다. 란이 엄마는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이다. 구미에서 태어난 란이가 사경을 헤매며 대구로 올 동안 엄마는 종적을 감췄다. 엄마는 란이가 잘 치료를 받고 있는지 전화로 한 차례 확인하고 나서 연락을 끊었다. 경찰은 아동학대죄로 란이 엄마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행방을 쫓고 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우여곡절 끝에 란이가 이름을 갖게 된 것도 3개월 후 단기 아동보호소에 입소한 뒤였다.

◆8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아이

란이는 지난 5월 27일(임신주수 29~31주 추정) 구미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당시 란이의 몸무게는 불과 1.15㎏.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란이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란이와 함께 구급차에 오른 산부인과 전문의는 공기주머니로 쉴 새 없이 란이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대구까지 왔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행히 란이는 마지막 숨을 놓지 않았다. 란이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생명의 끈을 이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란이는 링거로 영양제를 투입했고, 가느다란 튜브로 위장에 유동식을 흘려 넣었다. 한 달쯤 지난 뒤 란이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입으로 먹을 수 있게 됐다. 병원 관계자는 "아직 또래보다 작긴 하지만 아기가 이만큼 자라서 스스로 먹을 수 있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란이지만 넘어야 할 어려움은 여전하다. 특히 신생아 망막증으로 계속 시력을 관리해야 한다. 조산아들에게 이따금 나타나는 질환이다. 란이는 매주 눈 검사를 하며 경과를 지켜보고 있지만 지금보다 상태가 나빠지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최근 들어 란이의 눈이 점점 나빠지는 기색이어서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도 타들어가고 있다.

◆엄마 품에 안기지 못한 아기

"란이도 자기한테 엄마가 없는 걸 아나 봐요. 병원에서 다른 엄마들이 아기를 보러 오면 갑자기 보채더라고요." 병원에서 란이를 돌보던 배주경 사회복지사가 안타까워했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란이는 엄마의 품을 찾으며 칭얼거렸다.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한 번도 엄마 품에 안겨보지 못한 란이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틈날 때마다 란이를 안아주고, 아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란이를 돌봤다.

밤이 되면 유독 보채는 란이였지만 간호사들은 힘든 내색 없이 란이를 달랬다. 란이는 유독 가슴을 맞대고 안아주는 것보다 엉덩이를 받치고 앞으로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빌도 간호사들이 직접 만들어 인큐베이터에 달아줬다. 사비를 털어서 기저귀와 물티슈 등 필요한 물품을 보태는 등 자식처럼 돌봤다.

그러나 의료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란이를 아동보호소로 보내기로 했고, 란이가 퇴원하는 날 병원은 눈물바다가 됐다. 의료진은 100일을 앞둔 란이를 위해 마련한 옷 몇 벌과 모빌을 함께 싸서 보육시설로 보냈다. "아기가 건강해져서 고마울 뿐입니다. 이제 좋은 가정으로 입양돼 행복하게 자랐으면 해요." 사회복지사와 의료진의 기도만이 란이에게 남았다.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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