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경주의 둥근 추석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늘 그랬던 것처럼 화제는 많았다. 특히 지난 12일 경주에서 일어난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과 이달 28일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단연 앞선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달라지는 명절 차례 모습, 사드(THAAD) 배치 등등이 잇는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지내다 만난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라 더욱 생생하다. 걸러지지 않고 전하는 소식인 탓에 흥미롭다. 결론은 밝지 않지만.

먼저 지진 이야기다. 이번 지진은 국민, 특히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상 최대 강진이 두 번이나 연쇄로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지진은 어쩌면 우리 국민들에게는 큰 행운이었다는 말이 귀에 쏙 박힌다. 강진에 대한 대비도 없는 상황에서 진앙이 조금만 달랐거나 규모가 컸더라면 사태는 아마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도로, 다리부터 빌딩까지 툭하면 터지는 국내 건축 건설 분야 비리와 부실공사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이번 경주 지진은 미리 강진에 대비하라는 엄중한 사전경고로 받아들이고 이번과 같은 정도의 피해로 끝나게 한 '조상과 하늘'에 감사를 드려도 모자랄 듯하다. 이제 대비는 우리 몫이지만 남이 지은 건물에 사는 입장에서는 안전성 여부를 잘 알 수도 없고 믿기도 찜찜하니 그저 안절부절못한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걱정뿐이다.

다음은 김영란법이다. 전례 없는 법인데다 적용 대상이 공무원과 교직원, 언론인 등 400만 명에 이르고 그 영향력이 큰 만큼 온갖 다양한 사례에 대한 적용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쏟아진다. 역시 공직 분야 종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흥미가 끌린다. '이런 식으로 하면 법 적용을 받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등의 소위 '법망 피하기 수법'에 대한 설왕설래여서다.

현재 거론되는 좋은 사례라고 들려준 하나가 '계'(契) 모임의 활성화를 통한 빠져나가기 방법이다. 계 모임을 하면서 돈 씀씀이에 대한 규정을 보다 자세히 정하고 이를 증거로 남긴다는 방식이다. 법 적용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벌써부터 법망을 피하기 위한 묘안 교환이 활발한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김영란법 관련 회의를 주재하던 대구 한 자치단체장은 이런 '비법' 이야기가 쏟아지자 화를 냈다고 한다. 귀를 솔깃하게 하나 법 준수의 우유부단을 부추겨 찜찜하다.

그리고 명절 차례 등의 변화 모습이다. 해마다 맞는 설과 추석 명절의 차례, 집마다 사정이 다른 기제사 치르기의 뚜렷한 세태 변화다. 차례와 기제사를 여전히 구분해 치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여러 번의 기제사를 한꺼번에 모아 지내는 사례도 들린다. 말하자면 1년에 설과 추석, 그리고 기제사로 구분해 지내는 식이다. 추석 밑 집중된 산소 벌초 이야기도 들을 만하다.

굳이 벌에 쏘여 죽는 위험까지 감수하는 추석 밑 벌초의 1년 중 상시화다. 이는 사고 예방과 후손의 편의를 꾀하자는 속내 같다. 장묘문화의 변화 역시 시사하는 뜻이 깊다. 매장보다 화장이 대세인 가운데 수목장과 봉분 없는 가족장의 확산이 그렇다. 느슨한 명절 친인척 결속과 유대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제사의 얽매임보다 자유로운 삶에 방점을 둔 변화다. 이번 추석 연휴 인천국제공항 이용자가 97만 명이라는 수치는 좋은 사례다. 왠지 기분이 그렇다.

그렇지만 이번 추석 경주 보름달은 어느 때보다 둥글었다. 강진 피해를 본 경주지역에는 몰려오는 태풍의 간접 영향에 따른 비까지 내렸지만 인정(人情)만큼은 보름달처럼 모나지 않았다. 추석 제사를 끝내고 지진 피해 복구를 돕는 자원봉사의 발길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군 장병까지 힘을 보탰다. 1천250명의 민관군이 복구에 하나였다. 천년 전 경주에서 길쌈하며 추석 날 함께 어울려 '가배'라며 놀았듯이, 이번 지진 피해 복구의 자원봉사 노동도 그때 가배와 다름없다. 이번 가배는 보름달처럼 인정의 둥근 나눔이었다. 올 추석이 비록 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울하지만도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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