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여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의 날카로움이 숨을 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여름을 지나는 동안 나는 내내 열병을 앓았다. 너무 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내 안에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 때문이었다.
봄이 왔을 무렵 싹이 튼 나무는 처음에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초여름 날 무심코 들여다본 마음속에는 연둣빛이 아니라 검푸른 빛깔의 존재가 자라고 있었다. 아직은 어린 그 나무는 당황한 내 얼굴 앞에 덜 자란 열매를 주렁주렁 흔들었다.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무를 뽑아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뚫고 파괴할 것만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내 존재보다 커져 가는 나무 앞에 달려가 울부짖었다. 나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그러나 나무는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왜 그 나무가 내 안에 자라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씨앗을 심은 적도 물을 준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나무는 허락도 없이 나의 가슴 밭에 내려와 주지도 않는 사랑 대신 내 영혼의 빛을 빨아들이며 커져 갔고 결국 부인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 존재가 너무 낯설고 두려워 화를 내 보기도 하고 달래도 보았지만 나에겐 나무를 잘라낼 연장도 힘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나무 둥치 아래 기대어 앉아 항복을 선언했다.
"뭘 원하는 거야?"
나무는 느릿느릿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내가 자랄 수 있게 해줘."
한숨을 내쉬는 나를 바라보던 나무가 내 머리카락 위에 그늘을 드리웠다.
"외면한다 해도 내가 자라나는 걸 막지는 못해."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이대로 날 파괴해 버릴 거야? 나는 그렇게 크지 않아!"
"내가 자랄 수 있도록 네 하늘을 높이면 되잖아."
나는 나무의 무성한 가지를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그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졌지만 나무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잎사귀를 조금 흔들며 기분 좋게 웃었을 뿐이다. 나는 그 순간 인정해야 할 순간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노력해 볼게."
"해보는 거 말고. 죽을힘을 다해 줘. 우린 함께 성장할 거야. 네가 내 우주가 되어 주면 네가 얻을 열매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달콤할 테니까."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네 이름을 이제 알 것 같아. 내 사랑, 꿈, 희망, 내 모든 열망과 소망, 너는 나의 모든 것이야. 너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게. 함께 자라나자."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던 땅이 갑자기 금빛으로 물들었다. 나무가 그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 천천히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나무의 잎사귀가 별이 되어 하늘에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내가 꿈꾸던 것들임을 알았다. 나는 나무를 꼭 끌어안고 맹세했다. 절대로 너의 가지를 꺾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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