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 지진 후유증] 지나가는 車 가벼운 진동에도 '깜짝'

"자랑스러웠던 고향, 이젠 살기 겁나"

20일 오전 경주 동천동 한 목욕탕 굴뚝이 전날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4.5의 여진으로 무너질 위험에 처하자 크레인 장비를 동원해 굴뚝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20일 오전 경주 동천동 한 목욕탕 굴뚝이 전날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4.5의 여진으로 무너질 위험에 처하자 크레인 장비를 동원해 굴뚝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천년 고도 경주에 공포의 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지진에 이어 1주일 만인 19일 밤 또다시 규모 4.5의 강력한 여진이 발생, 많은 경주 시민들이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이다.

이날 오후 8시 33분쯤 경주 내남면 덕천리 산 99-6번지에서 규모 5에 육박하는 강한 지진이 또다시 나자 경주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이날 밤 대부분 뜬눈으로 새웠다.

강력한 여진이 발생하자 경주 시민들은 일제히 집 밖으로 뛰쳐나와 학교운동장 등 공터로 대피했고,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학생들은 조기 귀가했다.

경주시민운동장에는 지진이 발생하자 곧바로 수많은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경주시민운동장은 급하게 담요를 몸에 두르고 나온 시민들과 슬리퍼를 신고 나온 주민 등으로 밤새 북적였다.

한 주민은 "황성동 아파트에 사는데 지진으로 집이 너무 흔들리고 애들도 놀라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운동장으로 피신했다. 지진이 잠잠해질 때까지 이곳에 있다가 들어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운동장 주변에는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벤치에서 애들을 재우는 주민과 운동장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차에서 밤을 새우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대피한 주민들은 지나는 차량의 가벼운 진동에도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경주 시민들은 지난 12일 최대 규모 지진이 채 수습도 되기 전에 또다시 지진이 이어지자 노이로제 증상마저 보이고 있다.

경주 황성동 김모(59) 씨는 "집사람과 아들 내외와 함께 대피했다. 며느리가 임신을 했는데 많이 놀라고 무서워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또 다른 시민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우황청심환을 사러 약국에 갔는데 약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며 "약이라도 제때 공급을 해야지 이러다 제 명에 못 살겠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경주에는 지진 이후 불안 증세로 체증을 호소하는 환자는 물론 속이 불편해 먹은 것을 토하는 등 후유증을 앓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4.5 규모 여진이 난 후 밤새 '우르릉'거리는 여진이 계속되자 경주 시민들은 공포를 넘어 공황 상태를 보였다. 노약자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비명을 지르며 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가인 경주 성건동 일대에서는 진동에 놀란 학생들이 일제히 도로로 쏟아져 나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학생 류모(22) 씨는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하고 있는데, 갑자기 건물이 흔들려 뛰쳐나왔다. 또다시 큰 지진이 올까 봐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불안해했다.

가족들과 함께 지진을 피해 나온 한 80대 노인은 "경주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천년 고도 경주 시민이란 걸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이제 경주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겁이 나는 처지가 됐다. 지진 잦은 고향이 원망스럽다"며 울먹였다.

19일 여진이 발생하자 지진에 놀란 포항의 여고생 2명이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병원 치료를 받았다. 19일 오후 8시 40분쯤 북구 A여고 3학년 학생 2명이 호흡곤란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이날 모두 퇴원했지만 이 중 한 학생은 다음날 등교 후 같은 증상을 보여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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