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정당한 결정이었습니다"

수성아트피아 신임 관장 선정 과정에서 설(說)들이 많았다.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인데 특정 후보에 대한 비판이 언론에 보도되는가 하면, 수성구의회는 '도덕성과 면접내용'을 문제 삼아 임명된 김형국 관장을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몇몇 언론과 수성구의회가 제기한 의혹과 비판을 살펴보니,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 왜곡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의혹과 비난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운동에너지를 얻고 세상을 활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임 관장이 현직 국회의원 인척'이라는 사실이 있었다. 사람들은 '국회의원 인척'이라는 사실에서 거의 본능처럼 '직관'을 동원했다.

'뭔가 있겠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은 복잡하고 성가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쉬운 쪽으로 생각한다. 조목조목 따져서 진위를 밝히는 말보다 쉽고 단순한 구호에 흔히 휘둘리는 까닭이다. 수성아트피아 관장 해임촉구결의안을 주도했던 수성구의회 야당 의원들 역시 사실보다는 '그럴 듯한 쪽'으로 기울었다.

세상에는 사실이 아니고, 쓸모도 없지만 오직 '그럴듯하기에' 생명력을 지니는 견해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하도 많아 1990년대에 이미 그런 것을 탐구하는 'Memetics'라는 학문까지 나왔다. '밈(meme) 연구'라고 하는 이 학문은 '사실도 아니고 일말의 가치도 없지만 사람의 직관을 양분 삼아 마치 전염병처럼 입과 귀를 타고 번지는 것들을 연구'한다.

직관은 설명하기 어려우나 그 속에 내재된 본질을 마음과 몸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래서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사실관계가 명확한 것, 노력하면 확인할 수 있는 사안까지 직관에 의존하는 태도는 자신은 물론, 사회 전체에 해롭다.

비단 이번 수성아트피아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료에 근거한 사실'보다 '소문에 근거한 평가'가 우위를 점하는 일이 벌어진다. 천안함, 세월호, 사드에서 우리는 그런 사례를 보았다.

수성아트피아 관장 선임 과정에서 이진훈 수성구청장이 보여준 태도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언론의 비판과 수성구의회의 공세에 그는 "해당자가 면접 심사에서 최고 득점을 받았고, 외부 사람들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대구시와 해당자의 전임 근무지였던 동구문화재단에 조회한 결과, '결격사유'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를 임명하지 않아야 할 정당한 근거가 없다"고 맞섰다.

말이 쉽지, 선출직 단체장은 세간에 떠도는 말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새로 임명한 수성아트피아 관장이 훌륭한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는 그야말로 '미래의 일,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비난받고 있는 사람을 임명함으로써 감당해야 할 손해는 눈앞의 실체다. 게다가 '국회의원 인척이라 구청장이 알아서 긴다'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선출직 공직자들은 '실제로 잘 되어가기보다 잘 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기를 희망하는 경향'이 있다. 공공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당선이라는 사적 이익이 현실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 이진훈 구청장이 세간의 비난에 흔들렸다면 '사실'은 시궁창에 처박히고, 왜곡된 말들이 정설이 됐을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군주의 입맛에 벗어나는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언론과 SNS의 발달로 대중의 입이 전횡을 일삼는 현대사회에서 대중의 입맛에 반하는 행위를 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진훈 구청장이 꿋꿋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수성구의회에서 '해임촉구결의안'이 가결된 뒤 기자들이 이진훈 구청장을 둘러싸고 '오늘 의회 결의를 어떻게 보나' '신임 관장을 해임할 것이냐'고 질문을 쏟아냈다. 이 구청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당한 결정이었습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일방적인 비판 보도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정당한 결정, 실체적 사실이 힘을 얻기가 이처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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