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칼 춤

  박지웅(1969~ )

고향집에 가면

어미는 칼부터 든다

칼이 첫인사다

칼은 첫 문장이다

도마에 떨어지는 칼 소리

저 음절들을 맞추어 읽는다

부부의 물을 베던 칼

부엌에서 할짝할짝 울던 칼

-중략-

어미는 날 앉히고

칼춤을 춘다

문득 칼 냄새가 떠오른다. 시골집 부엌의 비린 부엌칼 냄새 같은 거, 우리 고향집엔 부엌칼이 몇 자루나 있었나? 하는 생각 같은 거, 밤마다 천장을 굴러다니던 쥐들이 싫어 가출한 누이가 들고나간 그 부엌칼 한 자루,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와 마당에서 누이의 머리칼을 자르던 부엌칼 냄새, 칼은 옆으로 누워 자지 못한다. 칼처럼 누워 자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귓속 냄새 같은 게 있다. 뜬 눈으로 날을 센 칼은 누가 집어올려도 날을 버렸다. 사는 게 시퍼렇게 질려서 어머니가 입술을 깨물며 나무 도마를 부엌칼로 찍어 대던 밤, 집안의 소 한 마리 훔쳐서 동네를 떠난 청년은 칼갈이가 되어 서울살이를 한다 했다. 칼은 들고나가 볕에 비추면 눈물이 환했고, 물에 비치면 짐승처럼 냄새가 올라왔다. 그 칼을 울게 하던 사람은 세상을 어디까지 깊이 찌르고 달아날 수 있었을까? 어느 집 칼이라도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어머니는 칼을 잡고 어린 닭 모가지라도 쳐서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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