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웨스턴 일렉트릭 사운드

LP 음악을 즐기는 빈티지 오디오 마니아라면 누구나 '웨스턴 일렉트릭 사운드'를 향한 열망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30년 가까이 LP를 고집해온 필자 역시 이 시스템에 대한 염원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평민들이 소유하기엔 불가능이다. 억대를 훌쩍 넘어서는 몸값과 이 스피커를 들여놓을 공간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웨스턴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1930년대 미국의 극장에서 사용했던 스피커와 앰프들을 일컫는다. 당연히 올망졸망한 한국의 아파트나 주택에서는 상생할 수 없다. 또한 70여 년의 세월 탓에 다들 시커먼 고철 덩어리다.

그런데 왜 열광하는 걸까? 소리 때문이다. 마치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의 거창하고 시원스러운 풍광이 귀를 마사지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필자는 한때 웨스턴 사운드를 찾아 남한 땅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고약한 것은 이 물건이 시중에서 보기 힘든 골동품인지라 멀리까지 발품을 팔아야 했으며, 접근도 쉽지 않았다.

소유자들은 대부분 과잉으로 치닫다가 꼭지가 돌아야만 멈추는 병적인 탐구심과 집착을 지닌 고독한 인간들이었다. 선물과 비굴 모드까지 동원하기도 했지만, 차츰 지치고 시들해졌다.

뜻밖의 행운이 떨어졌다. 얼마 전 지축이 울렁거렸던 경주에 웨스턴 일렉트릭 풀 시스템이 있다는 정보가 필자에게 전달됐다. 그것도 최초 버전인 1927년산 12A, 13A형에서부터 1935년 할리우드 대형극장 스크린 뒤에 웅크리고 있던 미로포닉 시스템까지 갖춰 놓았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필자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 안내 멘트가 끝난 곳은 보문단지 가장자리에 위치한 주차장이었다. 필자의 시야에 들어온 건물은 뜻밖에도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웨스턴 미로포닉이 뿜어내는 통쾌한 소리가 리스닝 룸에서 새어나왔다. 어른 키보다 높은 인클로저 위에 놓인 우람한 벌집 혼이 필자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이 고물 기계를 본래의 상태로 복구시키고 당시의 음을 재현시킨 유충희 관장이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박물관 3층으로 올라가 보라고 채근했다. 2층에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흐름을 귀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LP가 들어차 있었고, 위층에는 그것들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오디오시스템을 진열해 놓은 것이다.

990㎡(300평)에 달하는 오디오 전시실에는 웨스턴 일렉트릭뿐 아니라 히틀러가 애용했던 자이스 이콘 스피커, 브리티시 사운드의 진수 탄노이 오토그라프까지 20여 조가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취미생활을 넘어선 유 관장의 오디오 추구가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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