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니언을 보기 위해 미국의 모하비 사막을 지난 일이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사막의 풍경을 바라보며 고립무원에 갇힌 것은 아닐까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사막을 횡단하는 열차가 한 번씩 나타났고 그랜드 캐니언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메마른 사막에서 사막여우 같은 생명체의 출현을 기대하며 조리개를 분주히 여닫았지만 그 일은 실패였다. 다만 장엄한 자연의 절정인 그랜드 캐니언 앞에서 절규할 뻔했던 마음을 안고 돌아오며 시 한 편을 적었다.
자다 깨도 끝이 아닌 장편 사막 읽는다 혓바닥 갈라 터진 은회색 세이지브러시 메마른 백태를 긁는 모하비 지나간다
더없이 등 구부려 거북처럼 엎딘 발로 콜로라도 사억 년 빚어놓은 기억 좇아 빙의된 가벼운 몸체 난간에 부려놓는다
강물의 긴 새김질 바람이 쓰다듬고 신산한 세월 비껴가 된비알 곧추세운 그 붉은 층층의 절리 태초를 껴안는다
-「그랜드 캐니언」 전문
그리고 광활한 사막 전 구간을 둘러싼 철조망을 품고 왔다. 생명체가 없는 듯 보이지만 사막에 사는 동물이 로드킬(road kill, 야생동물들이 먹이를 구하거나 이동을 위해 도로에 갑자기 뛰어들어 횡단하다 차량에 치여 죽는 것)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기나긴 안전망을 구축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생존권 못지않게 동물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으로 느껴져 큰 감동을 받았다.
이번 추석 연휴에 길을 달리며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국도 구간 120㎞가량을 달리는 동안 크고 작은 동물이 쓰러져 있는 장면을 세 번이나 목격했다. 그 중 오르막길에서 만난 까치의 주검은 잊히지가 않는다. 쓰러진 까치 주변에 앉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리를 연신 조아리는 까치는 미물이라 치부하기에는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나라의 길은 도무지 생명체의 단서가 짐작되지 않는 모하비 사막과 달리 깨어 있는 푸름으로 인해 어디에서든 동물이 뛰어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킬을 막기 위한 배려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운전 중 쓰러져 있는 동물을 발견하면 멈칫 놀라거나 놓쳐버린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다.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일이겠지만 동물 출현이 빈번한 지역부터 로드킬을 예방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사람이나 동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존엄성을 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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