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년 4개월간 바닷가 돌며 노래한 풍류…『바닷가 그 입맛』

바닷가 그 입맛/구활 지음/눈빛 펴냄

수필가 구활이 5년 4개월 동안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오만 갯것들을 먹고, 갯바람을 맞으며 쓴 글이다. 음식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기보다는 바닷가에서 잡았다가 놓아준 풍류를 노래한다.

구활은 해학의 달인이다. 같이 점심이라도 먹을라치면 종일 웃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 나이 든 사람의 농담이 재미나면 얼마나 재미날까, 싶겠지만 구활의 농담은 아이들의 우스개처럼 가볍지 않다. 그 속에는 세상을 살면서 부딪쳤던 모순과 그 모순이 새겨놓은 세월의 주름이 있다.

풍류는 말 그대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삶의 경지를 말한다. 보이지 않지만 내 곁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바람처럼 풍류는 소아(小我)를 초월해 자연과 일체 되려는 몸짓이다. 그래서 풍류는 풍경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감각적 쾌락과 다르다. 바람이 꼭 산 좋고 물 좋은 곳만 찾아다니던가.

수필가 구활의 고향은 경산 하양이다. 초가집이 자리하고 있었던 금호강 강변에는 지금도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른다. 강물은 풋사랑을 띄워 보냈고, 이별의 눈물을 숨겨주었다. 그런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내 의식은 고향 강가에서 성장했고, 품성도 그곳에서 키워지고 다듬어졌다"고 고백한다. 하여 풋사랑을 실은 강물은 오래전에 흘러갔지만 애틋함은 그림자처럼 곁에 어른거린다. 구활은 그런 자신을 '해 질 녘 언덕 위에 서 있는 그림자'라고 표현한다.

구활의 문체는 웅장하거나 비장하지 않다. 당상관에 오른 선비의 자신에 찬 문체가 아니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돌아가자꾸나' 하고 낙향한 선비의 날 선 언어와도 거리가 멀다. 기름진 삶과 글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담백한 문장을 써내는 것은 의도한 바가 아니다. 자연을 닮은 삶의 태도, 자연을 닮은 문학을 좇다 보니 그렇게 됐다.

비 내리는 제주도의 가을을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키 큰 야자나무와 종려나무들, 남국의 식물들은 가을이 와도 쉽게 단풍이 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여름의 짙푸른 젊음으로 청춘을 노래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제주의 거리를 지키고 있다.'-헤밍웨이 바다- 중에서.

이번 작품집 '바닷가 그 입맛'도 그렇지만, 구활의 글은 바람처럼 물처럼 들쑥날쑥해 정해진 모양이 없다. 이리저리 둘러치는 파도 같다. 현대 미학에서 말하는 논리적 이론이나 학구적 미학이 없다. 그저 불쑥 솟아나는 느낌에 충실하다. 그래서 그의 글은 풍류고, 그의 풍류는 다분히 세속적이고 샤머니즘적이다.

구활은 "풍류란 '차원 높은 수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를 어깨에 힘주고 폼 잡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입을 무례하기 놀리며, 기이한 행동을 풍류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구활의 풍류는 자연에서 활법을 찾는 묵언의 참선이다. 그는 바랑을 메고 먼 길을 떠나는 빈승처럼 자연과 예인을 찾아 길 위를 떠돈다.

박양근 부경대 교수(문학 평론가)는 '구활이 현대 수필계에서 유불선을 넘나드는 유일한 산문가로 인정받는 것은 자유분방하면서도 고전에 바탕을 둔 문풍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라며 '그는 오늘도 풍류를 찾아 자연의 저지레를 만나러 떠난다. 그가 있기에 한국 문단은 해학의 멋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 번 다녀간 곳을 또 가자고 하면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니아들은 갔던 장소를 여러 번 가도 마다하지 않는다. 절집 한 곳을 제대로 보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물론 비 올 때와 눈 올 때도 봐야 한다. 계곡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른 새벽과 저녁노을이 노란 바탕에 붉은 붓질을 하는 은혜로운 순간도 망막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 푸른 달이 대웅전 처마 끝에 걸리는 그런 밤에도 홀로 거닐며 내가 누구인지 자아(自我)를 찾아 길 떠나는 나그네가 되어 보아야 제대로 구경했노라' 말할 수 있다. -랩소디 인 블루- 중에서. 247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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