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9월 19일 지청천이 이끄는 한국독립군과 중국 지린성 자위군은 만주국 초비단 부대 3천 명과 소수의 일본군이 지키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 쌍성보 인근에 집결했다.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자, 한'중 간 연합전선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지린성 자위군은 지린성을 중심으로 '반만(反滿) 항일(抗日)'에 뛰어든 중국인 부대였고, 당시 한국독립군의 규모도 6개 대대 1천600여 명에 달했다. 한국독립군은 이미 1932년 1~2월 사복성 부대와 연합해 서란현 전투를 치른 바 있어 중국군과 호흡이 잘 맞았다.
2시간에 걸친 총공세로 만주군은 1천 명이 죽거나 부상했고, 2천 명이 투항했다. 독립군과 중국군의 사상자는 각각 30~40명에 불과한 대승이었다. 이후 장춘과 하얼빈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 쌍성보를 두고 뺏고 뺏기는 혼전이 거듭되었고, 결국 항공기를 동원한 일본군에 넘어갔다. 중과부적이었지만, 쌍성보전투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기념비적 승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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