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5) 씨는 평생 모은 돈을 23일 눈 깜짝할 사이에 잃을 뻔했다.
등이 굽은 선천성 장애에, 30여 년 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차에 치이는 사고로 한쪽 다리마저 잃어 남아 있는 두 팔로 꿋꿋하게 생계를 꾸려가던 A씨는 세상을 믿지 못했다. 그는 그래서 소를 키우고 닭을 길러 팔아 번 돈을 꼬박꼬박 1천만∼2천만원 뭉칫돈으로 모아 은행에 맡기지도 않고 집안에 옷가지와 비닐봉지에 꽁꽁 감싸 보관했다.
평생 신체장애의 굴레에 시달리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쪽 다리마저 잃었지만 영세민의 처지에 낙담하지 않고 두 팔로 기어다니듯 소와 닭 등을 키우며 "떳떳하게 죽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장애인 아내와 함께 자식 셋을 명문대에 보내고 취직까지 시켜 최근에는 자식들에게서 용돈도 받아 "이제는 편히 쉴 때도 됐다"는 말도 주변에서 들렸지만, A씨는 두 팔로 세상을 들어 올리듯 축사를 기어다니며 가축을 길렀다.
A씨는 "영세민 아파트에서 쓸쓸하게 죽고 싶지 않다"며 "30평대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며 살다 죽겠다"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하지만 평생 모은 돈을 누군가 날강도처럼 훔쳐갔다. 23일 밤사이 배고파할 소가 걱정돼 사료를 주러 잠깐 축사에 나간 사이 자물쇠로 잠가놓은 축사 옆 주택 문을 부수고 소 팔아 모은 돈 8천만원을 훔쳐간 것이다.
A씨는 세상이 무너질 듯한 좌절감과 당혹감으로 온몸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힘겹게 전동휠체어에 올라타 구불구불한 도로를 1㎞가량 달려 주유소에서 전화를 빌려 경찰에게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해 집안에 설치해놓은 CCTV화면을 살펴보니 범인은 우모(48) 씨였다. 몸이 불편한 A씨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마다 우 씨를 불렀다. 일당 7만원씩 주고 축사 일을 시켰지만, 알코올 중독자인 우 씨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밥만 축내다 돌아가기 일쑤였다.
우 씨는 A씨가 축사에 일하러 나간 틈을 타 드라이버로 축사 주택 문을 따려다 여의치 않다 창호 문을 주먹으로 부숴 돈 봉투를 들고 도주했다. 8천여만원 돈 중 수표 3천만원을 어차피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에 옆에 버리고, 현금만 챙겨 광주의 대표 유흥가로 향했다. 우 씨는 주변 노래방에서 여성 접대부를 불러 유흥을 즐기면서 20여만원을 탕진한 후 추적에 나선 경찰에게 붙잡혔다.
경찰은 우 씨에게서 되찾은 현금 4천100여만원을 A씨에게 되돌려주고, 찾지 못한 수표 3천여만원에 대해 지급정지 신청한 뒤 피해 구제책을 통해 A씨를 도울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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