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경제 지표와 상황이 우리 경제 사상 최악의 상황이던 외환위기(IMF) 때와 판박이가 돼 가고 있다. 서민경제는 물론이고 고용과 산업 기반이 곤두박질치면서 정부가 제시하는 장밋빛 전망과는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실물 경제의 하락이 금융 경제로 이어질 수 있어 외환위기 상황이 그대로 재연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만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논란이 심화될 전망이다.
◆IMF와 판박이 수준인 각종 지표
우리 경제에 나타난 각종 지표가 IMF 때와 닮아가고 있다. 우선 기업들에 대한 신용을 살펴보면, 지난해 신용평가사들이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내린 기업은 159곳으로, 전년보다 26곳이 늘었다.
신용등급 강등 업체 수는 2010년 34곳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4년 133곳까지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160곳에 육박했다. IMF 위기 직후인 1998년 171곳이 강등된 이래 17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 연간 제조업 가동률은 74.3%로 1998년 67.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올해 2분기에는 제조업 가동률이 72.2%까지 떨어져 IMF 위기가 계속되던 1999년 1분기(71.4%)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를 두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한국 경제가 IMF 위기 당시보다 더욱 긴 경기 수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 2011년 이후 하락세를 타고 있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당시 29개월간 경기 수축이 이어진 것보다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서민 경제도 과거 회귀
통계청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9.3%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1.3%포인트나 껑충 뛰었다. 외환위기 여파에 시달리던 1999년 8월 10.7%를 기록한 이후 같은 달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청년실업률은 지난 6월에도 10.3%를 기록, 마찬가지로 1999년 6월(11.3%)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은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매달 같은 달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운 데 이어 하반기에도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외환위기 수준에 근접하는 모양새다. 이와 함께 6개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 백수'의 증가세도 이미 외환위기 수준에 육박한 상태다.
지난달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수는 18만2천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만2천 명이나 증가했다. 장기실업자 증가 폭은 실업자 기준을 구직 기간 1주일에서 4주일로 바꾼 1999년 6월 이후 최대, 실업자 수는 1999년 8월 27만4천 명을 기록한 이후 같은 달 기준 최대치이다. 지난달 전체 실업자 중 장기실업자 비율도 18.27%로 급증해 1999년 8월(20%)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올해 다시 시작된 공인중개사 시험 열풍도 비슷하다. 올해 공인중개사 시험 신청자는 19만1천여 명으로 작년보다 4만 명이나 늘었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에도 실업과 생활불안 탓에 공인중개사 시험 신청자가 이전보다 7만여 명 늘어나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선 바 있다.
고용시장의 악화는 가계소득의 정체와 직결됐다.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 증가한 데 그쳤다. 가구소득 상승률은 2014년 1분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2∼5%대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3분기 0.7%로 뚝 떨어진 뒤로 4분기 연속 0%대를 맴돌고 있다.
◆현실 모르는 정부
지표와 실물의 하락이 20여 년 전과 닮아가지만 정부의 시각만 다르다. 성장 여지와 체질 개선으로 IMF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설득력 없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실업률 상승에 대해 정부는 경제활동참가율이 상승한 탓도 일부 있다며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고용률은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 들어 역대 청년'여성 고용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여건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또 청년 취업률 상승은 청년층 구직활동이 늘면서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진 것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장기실업자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지연된 탓에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장기실업자 수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경제 상황을 진단함에서도 일부 경제 지표가 악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청년'여성 고용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증가하는 등 한국 경제가 어려운 대내외 여건에도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의 신용등급 하향조정과 관련해 정부는 2013년 이후 신용평가사들이 기업 신용등급이 과대평가됐다고 보고 '옥석 가리기'를 강화한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저조한 제조업 가동률에 대해서는 세계경제 저성장과 교역부진으로 글로벌 공급과잉이 장기간 해소되지 않은 데 일부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지금은 과거 IMF 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글로벌 수요가 부진해 수출이 저조하고, 외환시장으로 대표되는 대외 여건이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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