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교훈

경북대(석사)
경북대(석사)'모스크바 국립사범대(박사) 졸업

원전 사고 원인은 人災·불가항력 사태

후쿠시마 원전 규모 9 강진에 맥 못춰

국내 원전 전문가들 안전 너무 과신

경제 논리에 안전 밀리는 일 없어야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지진이 최근 우리 지역에서 발생했다. 지진은 그 자체로도 두려운 재앙이지만, 더 우려되는 건 우리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로 원전이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올해는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30년,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은 지 5년이 되는 해이다. 어떤 끔찍한 재앙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지만 원전 사고와 그 위험에 대해서만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예비치의 는 원전 사고 이후 삶이 무너진 사람들의 증언을 전하고 있다.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보호 장비 하나 없이 초기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피폭된 젊은 소방관과 그의 아내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위험을 실감케 한다. 인간원자로라며 남편에게 접근을 금지한 의사의 만류에도 온몸이 타들어가는 남편에게 이별의 입맞춤을 한 젊은 아내, 그녀는 남편의 임종을 지킨 대가로 임신 중이던 아기도 자신의 건강도 잃는다. 소련 당국은 수천 명의 소방관과 군인들을 현장에 투입해 납과 철근 콘크리트를 원전 위에 덮어씌웠고, 덕분에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작업에 동원되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체르노빌 근처는 우크라이나 쪽에서 반경 30㎞, 벨라루스 쪽에선 50㎞가 아직도 출입이 통제되는 죽음의 땅이다. 러시아 환경단체에 따르면 사고 이후 수십 년 동안 대략 150만 명이 이와 관련해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체르노빌을 관광지로 개발해서 몇 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여행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만큼이나 원전 개발과 수출에 열심인 러시아와 중국은 체르노빌 사고 최대 피해국가인 벨라루스에 원자로를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벨라루스 환경전문가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국토의 20%가 넘는 땅이 여전히 방사능에 오염되어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시예비치는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나기 전 일본 원전을 방문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체르노빌 사고와 원전의 위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작가의 질문에 일본의 원전은 그 어떤 재해에도, 가장 강한 규모 8의 지진에도 끄떡없도록 지어졌다고 원전 관계자는 단언했다. 그러나 후쿠시마를 강타한 지진은 규모 9에 가까운 강진이었다. 자연 앞에서 완벽한 기술과 안전에 대한 인간의 오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올해 초,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라는 모 교수에게 비슷한 질문을 할 기회가 있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태에 비춰 만약 지진이 발생한다면 우리 지역에 밀집한 원전은 안전한가라는 물음이었다. 독일이나 스위스 등 서구 여러 나라들이 원전을 포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을 못 견딘 것은 노후했기 때문이며, 우리 원전 기술은 일본이나 미국을 앞서며 몇 단계의 첨단 안전장치를 가동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너무나 확신에 찬 그 대답이 오히려 불안감을 불러왔다. 기계 장치에 의존하던 체르노빌 시절보다 훨씬 발전한 첨단 안전 시스템도 결국은 인간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닌가. 게다가 우리 원자력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가 핵과 원자력을 포기할 때 오히려 그에 집중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원전을 포기하지 않은 나라들은 성장이 급선무인 인도나 브라질,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가들이다.

체르노빌이 원전 발전에서 관리 소홀과 부주의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인재의 예라면, 후쿠시마는 그 어떤 안전장치와 기술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였다. 과거 체르노빌의 방사능 낙진이 바람을 타고 중국과 아프리카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4일이었다고 한다. 성장 급선무의 경제 논리로 안전관리시스템이 뒷전이 되는 일은 원전과 관련해서만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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