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바로 노인"

'老老케어' 황광자·고순교씨

20년 넘게 노노케어 봉사를 하고 있는 황광자(오른쪽) 씨와 고순교 씨는
20년 넘게 노노케어 봉사를 하고 있는 황광자(오른쪽) 씨와 고순교 씨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 어르신들의 다정한 친구로, 말동무로 지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욱진 기자

비슷한 연령의 노인 돌보며 매년 늘어나는 고독사 막아

말동무되고 음식 대접할 때 "고맙다" 말 한마디에 보람

112 종합상황실로 다급한 메시지가 접수됐다. "빨리 와주세요. 아무래도 위층이 이상해요."

신고자는 빌라 1층에 사는 김모 할머니. 2층에 사는 박모 할아버지가 2층에 올라갈 때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는데 어제부터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찰과 구급대는 신속히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안을 들여다보니 할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일찍 발견돼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평소에도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는 친구 사이였다. 할아버지를 치료한 의료진은 "만약 할머니의 신고가 없었다면, 할아버지는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노케어'가 한 생명을 구한 사례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Care) 활동인, 즉 친구가 되어 주는 노노케어는 노인 2명이 한 조가 되어 홀몸노인 1명을 돌보는 제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요즘 1인 노인가구의 증가와 함께 고독사가 매년 증가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비슷한 연령의 노인이 친구가 되는 노노케어는 공감대 형성 및 고독사 방지 등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국회의원이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고독사 관련 현황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 수는 지난해 1천245명으로 2011년(693명) 대비 179%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도별로 보면 2012년 741명, 2013년 922명, 2014년 1천8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혼자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 노인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

대구적십자사 소속 황광자(74)·고순교(71) 씨는 노노케어 천사다. 이들이 어르신들과 벗 삼아 자원봉사를 한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많은 어르신과 사귀었고, 사망한 분도 많다고 했다.

1995년부터 대구적십자사와 인연을 맺은 고순교 씨는 얼마 전 자신이 케어하던 할머니 한 분이 사망하자 수의(壽衣)를 마련해 고인에게 입혔다. "1주일에 한 번이지만, 집에 가서 얼굴을 맞대면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렇게 정이 들었는데, 훌쩍 떠나시니까 너무 섭섭해서.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지요." 그때 일이 생각이 난 고 씨의 눈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황광자 씨는 1993년부터 23년째 봉사,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황 씨의 봉사길에는 두 딸과 (외)손자·손녀들까지 동참하는 등 3대를 넘어 4대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집안으로 유명하다. 2014년엔 대한적십자사 '봉사 명문가'에 선정됐을 정도. 봉사명문가상은 3대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일정한 공로가 인정돼야 주어지는 상으로 적십자 가문의 최고 명예로 꼽힌다.

황 씨는 "노인들에게 말동무가 돼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서 대접하고,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다"면서 "집에 찾아가면 '너무 고맙다'라는 이 말 한마디에 미친다. 어떤 어르신은 손편지에 고마움을 담아 주셔서 보람을 느끼게 한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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