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 어르신이 모종삽과 화분 들고
지저분한 공터를 작은 정원으로 바꿔
정성껏 만든 7곳에 불법 투기 사라져
지난 22일 오후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 앞에 밀짚모자를 쓰고 주황색 스카프를 두른 멜빵 청바지 차림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이들 10여 명의 손에는 모종삽과 꽃이 담긴 작은 화분이 들려 있었다. 모두 모인 것이 확인되자 어르신들은 아파트 외벽과 인도 사이의 자투리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아내고, 꽃을 심기 위해 땅을 손질하는 모습이 매우 익숙해 보였다.
이날 삭막한 도심의 버려진 자투리땅을 꽃으로 물들이는 익숙하지 않은 광경을 연출한 사람들은 대구시 북구 대불노인복지관 소속의 '게릴라 가드닝 시니어봉사단' 어르신들. 북구지역 내 쓰레기 불법 투기가 심각한 지역의 미관을 재정비하고, 젊은 세대로부터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변화시키자는 취지로 올해 2월 결성된 이 봉사단은 지금까지 총 7곳을 찾아 게릴라 가드닝 활동을 했다. 총 21명의 어르신이 봉사단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날은 18명의 어르신들이 꽃을 심으며 구슬땀을 흘렸다.
'게릴라 가드닝'은 도심에 버려진 자투리땅이나 누구도 돌보지 않는 거리 빈터에 꽃과 식물을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드는 환경개선 시민운동이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 버려진 공터에 꽃을 심고 정원을 조성한 것이 시초다.
이날 게릴라 가드닝을 할 장소를 추천했다는 이태규(68) 할머니는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 너무 지저분하고 보기에 좋지 않아 이곳에 꽃과 식물을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면서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등 노년이 돼서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점이 정말 뿌듯하다. 특히 쓰레기 불법 투기로 지저분했던 공간이 깨끗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의 치유도 하고 보람도 느낀다"고 환하게 웃었다.
거름 포대와 꽃 화분을 옮기고, 땅을 고르고, 잡초를 뽑느라 금세 땀범벅이 됐지만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아파트 외벽을 따라 100여m 이어진 공간이, 무성했던 잡초와 각종 쓰레기 더미가 치워지고 예쁜 꽃이 핀 작은 정원으로 탈바꿈하자 어르신들의 표정은 '해냈다'는 성취감에 충만했다.
2시간여가 흐르자 삭막했던 공간은 분홍빛의 카멜레온꽃과 바늘꽃이 뿜어내는 화사함에 물들어 있었다. 밀짚모자를 벗고 땀을 훔치는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덩달아 웃음꽃이 피었다. 한 할아버지는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뭔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쁘다"면서 "또 사회적으로 상실했던 역할을 다시 찾고, 인정받으며 활기차고 건강한 신노년을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대불노인복지관 윤미경 복지사는 "지금까지 총 7곳에서 게릴라 가드닝 활동을 했다. 앞으로 3곳을 더 찾을 예정"이라면서, "그동안 어르신들은 원예 기초 이론 및 실습 교육도 받고, 게릴라 가드닝 우수 사례 선진지역도 견학하는 등 열정이 대단하다"고 했다.
어르신들의 게릴라 가드닝 활동은 도시 미관을 아름답게 할 뿐 아니라, 쓰레기 불법 투기 문제와 범죄 감소 등의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실제 대불노인복지관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성한 7곳의 정원 대부분에서 쓰레기 불법 투기가 거의 사라졌다. 어르신들이 정성껏 화단을 조성하는 모습에 감동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쓰레기 불법 투기를 견제하고, 계도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게릴라 가드닝 사업을 처음 제안한 대불노인복지관 김영모 관장은 "게릴라 가드닝으로 조성된 정원의 사후 관리는 각 주민들이 맡게 돼, 깨끗해진 공간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자체적으로 일고 있다"며 "지역 내 기업체 봉사단들도 참여 의사를 전달해 옴에 따라 게릴라 가드닝의 규모를 점차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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