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제2의 우생순'을 위하여

'우생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어떤 이의 인생 이야기가 아니다. 변변한 전용 구장 하나 없이 체격의 열세, 얇은 선수층 등을 극복하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강호가 된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이야기다.

여자 핸드볼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연거푸 금메달을 딴 효자 종목이다. 한국의 구기 종목 역사상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유일한 종목이다. 비유럽 국가 중에서 거둔 유례 없는 놀라운 성적이다.

여자 핸드볼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투혼을 발휘, 후일 영화로 만들어진 '우생순'으로 전 국민을 감동시켰다.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한국은 유럽의 강호 덴마크와 2차 연장과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아쉽게 패했다. 비록 은메달이었지만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핸드볼의 현실은 부끄럽고 참담하다. 대한핸드볼협회가 옛 영광을 재현하려고 2011년 신설한 SK핸드볼 코리아리그의 지방 경기에서 이러한 현실이 극명하게 나타났다. 코리아리그는 100명 안팎의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수들만의 리그로 진행되는 게 다반사였다. 채널이 늘어났음에도 고정적인 TV 중계방송도 없었다.

비인기 종목의 한계를 입증이라도 하듯 지난 8월 개최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은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7점이나 앞서던 러시아전을 비롯해 프랑스와 스웨덴전에서 역전패하며 예선 탈락했다. 우리 선수들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열정과 투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는 우리가 아는 '우생순'이 아니었던 것이다.

국제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인의 저력과 투혼을 각인시킨 핸드볼. 그러나 정작 국내에선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달고 다닌다. 핸드볼 강국에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는 게 뭘까? 핸드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누구나 생활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핸드볼을 즐길 수 있는 토대 마련이 절실하다.

금메달이나 우승의 순간만 기억하는 우리의 정서, 함께 힘을 모으지 않고 남 탓하는 세태가 더 큰 문제는 아닐까? 이런 반성의 바탕 위에 필자가 올해 회장을 맡은 대구시핸드볼협회는 저변 확대를 위한 선수들의 재능기부, 핸드볼 사랑 서포터스 구성 등 온'오프라인을 통해 '핸드볼 2020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여자 실업팀인 컬러풀대구(대구시청)의 재능기부로 SOS어린이마을에서 8주 동안 시설 아동을 대상으로 핸드볼 사랑교실을 운영하고, 페이스북에 핸드볼협회 페이지와 컬러풀대구 핸드볼 서포터스 그룹을 만들어 알리고 있다. 이달 2~4일 대구시민체육관에서 펼쳐진 SK핸드볼 코리아리그 대구 경기 때는 SNS와 대구시 내 전광판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이 덕분에 대구 경기가 열린 시민체육관은 만원(1천 명)을 기록했다.

핸드볼은 어느 구기 종목보다 역동적이고 매력 있는 경기다. 경기장을 찾아 처음으로 경기를 접한 관람객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대구시핸드볼협회의 노력은 아직 찻잔 속의 미풍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번 경기를 통해 '하면 된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봤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온 국민의 핸드볼 사랑으로 이어져 '제2의 우생순'이 탄생하는 촉매제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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