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촌지'
어느 순간 특혜 달라는 뇌물로 변질
권력 핵심층 부정'비리 끊이지 않아
21세기 부패 없는 국가 되기를 소망
역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 중 시행을 앞두고 우여곡절을 가장 많이 겪은 법률이 바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일명 '김영란법'일 것이다. 오죽하면 시행도 되기 전인 지난 7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결까지 받아두었으니, 오늘부터 시행되고 나면 국회에서 법률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하거나, 법률 자체를 폐지하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있을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5월이 되면 '스승의날'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친구들과 용돈을 조금씩 모아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분필 한 통과 색종이 한 꾸러미를 사곤 하였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정성스레 색종이를 오려 분필 하나하나를 예쁘게 포장한 뒤, 스승의날 아침 교탁에 올려놓고선 선생님 표정을 뚫어지게 쳐다보곤 하였다.
어떤 선생님은 아무런 말씀 없이 빙그레 웃으시며 색종이를 감싼 분필을 꺼내 수업을 시작하셨다. 다른 선생님께서는 "너희들이 무슨 돈이 있어 이런 걸 준비했냐"고 타박하시고서는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하시며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에는 선생님께서 반 친구들 모두에게 간식을 사 주셨던 기억이 난다. 늘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분필로 칠판을 가득 메우시는 선생님의 소중한 손가락에 분필 가루가 묻지 않기를 바라는 어린 제자들의 마음이 모아져 자그마한 촌지로 전달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어떤 선생님은 기꺼운 마음으로 받으시고, 못내 어린 제자들의 감사해 하는 마음을 그냥 받기에 불편하신 선생님은 굳이 돈으로 따지자면 더 큰 선물로 돌려주셨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촌지의 첫 번째 의미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 한다. 두 번째 의미는 '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는 돈. 흔히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것'이라 한다. 특별히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자그마한 물건이나, 약간의 돈을 전달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미덕이요, 오랜 관행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경제 개발의 과정에서 제한된 국가 예산을 기간산업 설립과 SOC 투자 등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교사를 포함한 공직자의 급여 수준이 그 노력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공적 서비스를 제공받은 수혜자의 입장에서 감사의 마음을 촌지라는 명목으로 전달해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지 촌지라는 것이 내 자식을 잘 봐달라는 이유로, 나에게 무슨 특혜를 달라는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또한, 거액의 부조금이나 용돈, 향응을 대접받더라도 직접적인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은 사례가 비일비재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해관계자 모두의 감사한 마음을 함께 모아서 당당하게 전달하려는 촌지가, 어느새 나 개인만의 이득을 위해 남몰래 전달하는 뇌물의 변명거리로 전락하였다.
'김영란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고, 인기 있는 직업은 아마도 교사와 공무원일 것이다. 이는 직업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연금을 포함한 경제적인 처우에 있어서도 일부 전문직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결코 낮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누구도 수백만원을 아무런 이유 없이 용돈으로 받겠다는 생각으로 공직에 입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식사 등 음식물에 대해서는 3만원, 금전 및 음식물을 제외한 선물에 대해서는 5만원으로 정해진 한도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 다소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행되기도 전에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을 받은 '김영란법'이니 우선은 시행하고, 이로 인한 폐해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 차차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겠다.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여 대한민국의 국격을 전 세계에 드높인 시기였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급행료와 뇌물이 횡행해졌고, 지금까지의 모든 민주화 정권에서 권력 핵심층의 부정과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제 21세기 전반의 대한민국은 부패가 사라진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초석이 뿌리내려졌다는 역사적인 성취가 이룩된 시기로 후세대에 기억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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