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醫窓] 유비무환(有備無患)

강구정 교수
강구정 교수

서경의 열명 편에 나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은 '미리 준비가 돼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적군을 눈앞에 둔 군대에서 늘 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사회 전반에 걸쳐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다고 자주 얘기한다. 세월호 사고처럼 날벼락 같은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는 불행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미국에 머물면서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와 따라야 하는 국민이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미국에서는 넓은 길이든 좁은 길이든 안전을 위한 정지 표지판이 무수히 많다. 정지 표지판이 있으면 지나가는 차는 반드시 정지했다가 다시 출발해야 한다.

항공기를 탄 뒤 몇 시간이고 이륙하지 않고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갑작스러운 기상변화로 이륙을 하지 못하고 관제탑의 이륙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에도 탑승자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기다린다. 폭설이 오면 대부분의 관공서는 며칠씩 문을 닫는다.

개원의사들 사이에는 우스갯소리로 '유비무환'이란 말이 자주 사용된다. '비'는 준비한다는 뜻의 '비'(備) 대신 우리말 '비'(雨)를 집어넣어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고 푸념 섞인 얘기를 주고받는다. 비가 오면 사소한 질환은 귀찮아서 병원에 가지 않는다.

'유비무환'이 중환자가 찾는 대학병원 응급실에도 해당될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비가 오던 9월 중순 주말 당직을 서던 안과 전공의는 "휴일에 병원 당직을 서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유비무환이라서 좋다"고 했다. 응급실로 오는 안과 환자는 주로 눈을 다친 환자들이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주말만 되면 전국 어디서나 벌초가 이뤄진다. 벌초를 하면서 예초기로 풀을 베고 낫이나 톱으로 나무를 자르다가 눈을 다치는 경우가 많아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안과 환자가 줄을 잇는다. 그런데 비가 와서 벌초를 하지 못하게 되니 땅벌에 쏘여 얼굴이 퉁퉁 붓거나 눈을 다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당직 서기가 편하다는 얘기다.

나도 최근 예초기를 자주 사용하게 됐다. 예초기를 다룰 때는 보호 안경과 플라스틱 그물망이 있는 안면보호대를 쓰고 쇠로 된 날 대신 플라스틱 끈을 사용한다. 조금은 거추장스럽고 성능은 좀 떨어지지만 돌이나 나무 근처의 풀도 쉽게 제거하고 돌이나 나무 파편이 튈 염려도 없어 한결 안전하고 깨끗하게 잡초를 제거할 수 있었다.

조금 느리고 돌아가더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전을 늘 염두에 두는 일상생활이 큰 불행을 초래하는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고 행복의 중요한 방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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