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여자도 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되었군!"
남자는 감탄했다.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여인의 그림들을 자신의 화랑에 걸어 놓았다. 평론가와 컬렉터들의 사전 조율 없이 무명 화가의 전시회를 여는 것은 모험이다.
그림이 팔리지 않으면 화랑주는 경제적 손실을 떠안아야 하고, 비평가들의 신랄한 붓끝에 찔린 화가는 다시 캔버스 앞에 앉기 어렵게 된다. 이 사실을 안 여인은 작품을 떼 달라고 애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전시 작품의 주인공은 조지아 오키프.
그녀는 시골학교 신출내기 미술 선생이었다. 당시 그녀의 이름을 아는 평론가나 컬렉터는 없었다. 반면 화랑주는 뉴욕의 거리 풍경을 흑백 스냅으로 찍은 '종착역'과 '겨울, 5번가' 등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그는 황홀한 색상과 예리한 선으로 자연과 사물을 묘사하는 오키프의 그림에 감동하고 반해버렸다.
"내 스튜디오로 오세요…. 당신을 미국 최고의 화가로 만들어주겠소."
20대 무명 화가 오키프와 50대 거장 스티글리츠의 만남은 이후 애정의 떨림과 망설임, 내밀한 욕정과 질투, 쓰라린 배신과 파국의 파노라마로 전개된다.
먼저 시골 처녀는 카메라 앞에 발가벗었다. 사진작가는 화가의 온몸 구석구석을 렌즈를 통해 탐사한다. 이 사진들이 스튜디오를 나서자 관객들은 열광했다. 덩달아 에로틱한 오키프의 그림도 호평과 인기를 얻는다.
인간의 로맨스는 언제나 기승전결이 전개되는 법. 영감을 주고받는 부부 예술가들에게도 이쯤에 균열이 생긴다.
소유욕이 강하고 자아가 셌던 스티글리츠가 오키프보다 18세나 어린 도로시 노먼에게 연정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을 찍는 순간마다 마치 처음처럼 사랑한다고 공언했던 스티글리츠의 배신에 오키프는 심장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는다.
영화배우로 더 잘 알려진 밥 발라반 감독이 스케치한 영화 '조지아 오키프'는 지금까지 묘사한 줄거리를 생생한 동영상으로 옮긴 최근작이다.
특히 오키프 역을 맡은 조안 앨런과 스티클리츠를 쏙 빼닮은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쓰라린 황홀경을 선사한다. 아울러 남편이자 애인의 배신에 과연 화해의 가능성은 있는지…, 그 혼란스러움도!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 삶의 이치다. 영화의 후반부, 오키프는 뉴멕시코의 황량한 사막으로 떠나 누드 사진 속의 관능적이고 무기력한 역할을 벗어던지고 화가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밥 발리반의 '오키프'는 20세기 미국 미술계의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 조지아 오키프의 지독한 로맨스를 담담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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