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이 모였다. 공직자, 사업가, 대학교수도 있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닿은 사람도 끼어 있다. 밥을 먹고 술도 한잔 나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끝에 화제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즉 김영란법으로 흘렀다. 경제적 파장을 염려하는 말도 나왔고, 인간 세상의 기본적인 정(情)마저 없애는 법이라는 성토도 나왔다. 말 그대로 '부정한 청탁과 금품 등의 주고받기를 금지하는 법'이니 생각만큼 큰 파장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말꼬리 잡기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말했다. "청탁이면 다 나쁜 것 아니냐? 부정한 청탁 말고 깨끗한 청탁도 있냐?"고 답이 날아온다. "깨끗한 청탁이 바로 부탁이다!" 취기가 살짝 오른 한 사람이 맞받아친다. "깨끗한 청탁의 사례를 들어봐라. 도대체 청탁과 부탁의 차이가 뭐냐?"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있었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라는 코너에서 부탁과 청탁의 차이를 명확하게 정의했다. 누군가에게 민원(또는 업무) 처리를 잘해달라고 전화했는데, 상대방이 일 처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 발을 쭉 뻗고 자면 '부탁', 쭈그리고 자면 '청탁'이라는 내용.
앞서 6인의 식사 자리로 돌아가 보자. 깨끗한 청탁, 즉 부탁의 사례로 이런 답이 나왔다. "내 이익과 관계없이 일 처리를 공정하게 해달라는 거, 바로 그게 깨끗한 청탁이다."
그럴 듯하게 들렸는지 일동은 잠시 침묵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려는 찰나, 앞서 말꼬리 잡기 선수가 나섰다. "공정한 일 처리를 부탁한 그 사람이 누군데? 사회정의 실천가냐? 국회의원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예, 알겠습니다'하고 원리원칙대로 일 처리할까. 아마 '왜 전화했지, 무슨 관계지' 등등 온갖 걱정하느라 담당자는 머리가 깨질걸."
나머지 5인의 머릿속엔 '아! 그렇구나. 부탁처럼 보여도 청탁이나 압력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순진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누군가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국회의원이면 괜찮아. 정치인들은 이번에 다 빠졌잖아. 그래! 국회의원한테 '청탁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되겠네."
필자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깨끗한 청탁'은 없다. 적어도 사회적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 사이에선 그렇다. 바꿔 말하면, '부정 청탁'이라는 말 대신 '청탁'이라고 써도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부정한 금품, 부정한 수수'가 아니라 그저 '금품 등 수수의 금지'라고 썼듯이.
'누구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편의 좀 봐달라는 건데. 뭘 그렇게 야박하게 구느냐?'고 따져 물어도 소용없다. 법이 그렇다. 바로 그게 김영란법이다. 3만원 이하 식사, 5만원 이하 선물, 10만원 이하 경조사비가 핵심이 아니다. '3'5'10만원법'이 아니라 '청탁과 금품 수수 금지법'이다.
물론 경제적'사회적 파장이 적잖을 것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민들이 겪는 고통이 크니, 법을 수정하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결까지 받은 법률이니만큼 폐지는 어림도 없고, 수정도 쉽잖다. 아울러 '내부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가 많은 법이다. 지금껏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영화 대사 중에 '배려가 계속 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지속적인 배려가 이제는 권리로 변질됐고, 그 권리를 박탈하려 하니 '문제가 심각하다'며 악다구니를 쓰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지금껏 살면서 청탁은커녕 부탁할 사람조차 없었고, 예식장 뷔페가 아니면 3만원짜리 식사는 엄두도 못 냈던 대다수 국민들의 시각에서 보면 '김영란법'은 너무도 당연한 법이다.
앞서 6인의 식사와 술값은 과연 누가 냈을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식사 자리를 하는 것은 좋은데, 1인당 3만원 한도를 넘겨버렸다. 정답은 식당 주인. 오해하지는 마시라. 앞서 모임은 회비를 거두는 계모임이었고, 모임의 총무가 바로 식당 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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