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김영란법은 경제에 독(毒)?

대한민국이 28일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기대와 우려로 들썩이고 있다. 12년 전 오세훈법, 성매매특별법 시행 때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지난 2004년 오세훈법으로 불린 정치자금법 개정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차단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문화를 만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업활동과 소비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음식점, 꽃집 등 서민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란 주장도 나왔으며, 정치인들은 "국회의원 정말 못해먹겠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오세훈법은 다른 역기능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기업활동이나 소비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났다.

같은 해 성매매특별법 시행 당시에도 반대의 목소리는 높았다. 성매매 산업이 위축돼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욱 타격을 받게 됐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이 법 시행의 여파로 호텔과 숙박업소, 유흥업소, 술집, 미용실, 옷가게, 화장품가게, 목욕탕 등 서민생활과 직결된 업종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예상도 거셌다. 막상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됐지만 걱정과 달리 전국의 숙박업소가 문을 닫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김영란법과 관련된 각종 우려가 난무하고 있다. 우선 외식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고급 횟집이나 한정식, 고깃집 등 상대적으로 고가의 식당은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 식당들은 3만원 이하의 김영란법 메뉴를 내놓는가 하면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직원들을 내보냈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화훼 등 농수산업도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골프 등 이른바 접대와 관련된 업종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간관계가 앞으로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오세훈법, 성매매특별법, 김영란법 시행 당시 반대 측의 주장은 모두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과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부패로 인한 경제 성장은 없다. 청렴도가 높을수록 경제가 탄탄해지고 1인당 소득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부정부패나 정경 유착을 통해 일시적으로 경제가 활기를 띠고 특정 기업이 호황을 누릴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성장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오고 비효율성을 높여 경제에 독이 된다고 지적한다. 실제 현대경제연구원이 2012년 한국의 청렴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까지 높일 경우 연간 경제성장률을 0.65%포인트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오세훈법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스스럼없이 오가던 돈뭉치와 사과 상자 전달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과거 정치인들은 이를 추억으로 기억하는 반면 이후 세대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으로 성매매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부인할 수는 없다. 법 조항이 사문화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성매매는 불법이라는 인식을 국민과 사회에 심어줬다. 시행 이전에는 관행으로 성매매를 용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법 시행으로 성매매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확산된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걱정되는 여러 부작용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법의 취지대로 깨끗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자는 목표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법 시행 초기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 법은 인간관계를 막는 법이 아니라 '정직하고 투명하게 만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영란법을 계기로 비효율적인 접대'청탁 문화가 개선돼 투명사회를 앞당길 것이라는 공감대가 더욱 확산되고 설득력을 얻기를 기대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생길 수 있는 일시적인 충격을 딛고 일어나 더욱 깨끗하고 탄탄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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