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김영란법 만세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올해 생일엔 축하화분 셋밖에 안돼

예년엔 집 마당에 수십개 난 놓여져

바라던 '부정부패 퇴치법' 시행 덕분

남북통일 대비 정신세계 정화해야

내가 평생 사랑하며 읊조리는 동서양의 시가 몇 편 있다. 그 시들은 내가 자다가 밤중에 벌떡 일어나도 암송할 수 있을 만큼 나에게는 매우 친숙한 가사들인데 그중의 하나가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읊은 '무지개'라는 제목의 시이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 보면

내 가슴 두근거려

내가 어렸을 때 그러하였지

어른이 된 지금도 두근거려

늙어도 그랬으면 오죽 좋으랴

무지개 봐도 감동 없는 그런 인생

나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아요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

앞으로 살아야 할 내 생의 하루하루

하늘이 내게 주신 경건한 마음으로

얽혀지기 바라네

나는 가끔 나 자신을 향하여, 때로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자 모여든 후배들을 향해, "꿈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꿈은 어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그리고 내일을 위해 가지는 희망일 수도 있고, 아직은 분명치 않은 막연한 기대일 수도 있다. 개인의 꿈은 겨레의 꿈과 이어질 수도 있고, 겨레의 꿈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 꿈일 수도 있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이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저 유명한 '워싱턴 입성 행진'에서 수십만 군중을 앞에 놓고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부르짖은 그 한마디를 우리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꿈은 매우 소박한 꿈이었다. 킹 목사는 그 꿈이 자기 생전에는 이뤄질 수 없겠지만 아들과 딸들의 미래에는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랐는데, 백인과 흑인들의 후손들이 함께 앉아서 먹고 마시며 함께 사는 미국을 꿈꾸었을 뿐이었다. 하기야 상전의 아들'딸과 노예의 아들'딸이 한자리에서 먹고 마시는 일이 1960년대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킹 목사의 그 꿈은 50년 뒤에는 현실이 되지 않았는가? 아직도 미국 땅의 여기저기에서 인종차별의 악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제발 이러지들 마시오"라며 오늘 흑백의 화합을 다시 호소하는 미국 대통령이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란 사실이 '꿈'의 소중함을 우리들에게 일러주고 보여주는 산증거가 되는 것이다.

지난 9월 28일, 공자께서 탄생하신 날, 9'28 수복으로 우리가 침략자들을 서울에서 몰아낸 그날, 바로 그날, 4년 넘게 시달리기만 하던 김영란법이 시행령에 따라 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으니, 9월 28일은 여러 면에서 이 겨레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날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아직은 김영란법이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노래한 '하늘에 걸린 무지개'나 다름없는 꿈속의 꿈이지만, 대법관을 지낸 가냘픈 여성 법관이 기초한 이 법안의 파급효과는 진실로 폭발적이라고 여겨진다. 이 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논란을 거뜬히 이겨내고 시행'공포된 것은 썩을 대로 썩은 우리의 공직사회뿐 아니라 남북통일에 대비해야 할 이 겨레의 정신세계를 대청소로써 정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실례를 하나만 들어보겠다. 내 생일이 10월 초인데 해마다 집에서는 냉면을 반죽하고 눌러서 점심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한다. 우리 집 마당과 내가 사는 동네가 내 생일날 낮에는 해마다 왁자지껄하다. 올해도 150명쯤의 손님들이 냉면 한 그릇을 대접받고 돌아갔는데 예년에는 이맘때가 되면 우리 집 마당에 수십 개 난 화분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셋밖에 안 된다. 5만원이 넘는 큰 화분을 '김영란법 전도사'인 나에게 차마 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수입'은 줄었지만 나는 한량없이 기쁘다. 정말 감격스러운 생일이었다. 이는 양심 있는 국민이 모두 기다리고 바라던 '부정'부패 퇴치법'이 아닌가?

불법자'범법자를 색출하기 위해 '파파라치 양성소'도 문을 열었다는데 현행법은 3(식사)'5(선물)'10(경조비)만원이라지만 그것도 3'5'5로 개정되어, 부정'부패'부조리가 척결되기를 바란다. 통일을 앞두고 대한민국에 경사가 났다.

김영란법 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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