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 신지식 가르쳐주자고 설립
23년 동안 1만6000명이 정보화 교육
초기엔 어르신들이 직접 가르치기도
홈페이지 경진대회 등 수상자 늘어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 가면 '원로(元老)방'이란 곳이 있다. 중구시니어클럽 2층에 자리 잡은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버 컴퓨터 교육의 산실이다. 그래서 컴퓨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지역의 어르신들은 대부분 '원로방'이라는 세 글자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1993년에 창립했으니, 올해로 23년이나 됐다. 지난달 28일 오전 찾은 원로방에는 수십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강사의 설명에 따라 개인 홈페이지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 너머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어르신,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다는 어르신 등 모습은 다양했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원로방은 노인들에게 '신지식을 가르쳐주자'는 취지로 처음 태어났다. 당시 원화여고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고 김석찬 원로방 초대회장과 의학박사였던 고 김대수 2대 회장이 체신청(지금의 우정청)에서 기증받은 컴퓨터 6대를 중앙도서관 노인독서대학 한쪽에 설치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1999년 옛 삼덕어르신도서관(현 중구시니어클럽)으로 자리를 옮긴 뒤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2009년 4대 회장에 선출돼 현재 원로방을 이끌고 있는 조래철(88) 회장은 "그분들은 당시 체신청을 몇 번이나 찾아다니며 노인 대상 컴퓨터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끝에 중고 컴퓨터 6대를 기증받아 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 "원로방의 산실 격인 두 분은 이미 작고하셨지만, 설립 취지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고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3년이 흐르는 동안 원로방에서 정보화 교육을 받고 과정을 수료한 어르신만 작년까지 총 1만6천여 명에 이른다. PC 기초과정은 지난해까지 190기, 5천834명이 수료했다. SWISHMAX(플래시 생성 툴) 초급 및 실용, 한글, 포토샵, 모바일, 엑셀, 동영상 등 6개 일반과정 수료생은 1만747명에 달한다.
초기엔 컴퓨터를 잘 아는 어르신들이 강사로 활동하며, 노인들을 직접 가르쳤다. 조 회장도 지금은 강단에서 물러났지만, 2005년부터 10년가량 PC 기초과정 강사로 활동했다. 그는 "OS도 처음에는 도스를 배웠는데, 이젠 윈도 세상이 됐지. 컴퓨터만 배우고 있어도 늙을 새가 없다"며 활짝 웃었다.
조 회장은 1993년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한 후 중구청, 수성대학 등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다가 원로방 소식을 듣고는 달려왔다고 했다. "원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어. 그러다 원로방을 알게 됐지. 우리나라 최초의 실버 컴퓨터 교육장이잖아."
조 회장은 원로방에 나오지 않는 날에는 캠코더 달랑 하나 메고 전국의 산과 들, 문화유적지를 누빈다고 했다. 최근 동영상 작품을 만들어 사이버 공간에 올리는 취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 원로방 강단에 서는 5명의 컴퓨터 강사는 모두 한국정보화진흥원 자격증을 취득한 실력이 출중한 강사진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수강생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게 조 회장의 설명. 고령자PC경진대회, 전국홈페이지경연대회, 전국어르신인터넷과거시험 등 각종 노인 대상 컴퓨터경진대회에서 수상하는 원로방 학생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특히 원로방은 컴퓨터 초보자를 잘 가르치는 것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강사들이 초보자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잘 가르쳐주면서 소문이 난 것 같다. PC 기초과정이 인기가 많다"면서 "특히 동영상 교육을 맡은 강사는 중·고교 컴퓨터 교사들을 지도한 사람으로, 실력이 뛰어나다. 우리나라 최초로 실버들을 위한 문화의 산실인 만큼 다른 곳에 없는 전통이 힘"이라고 설명했다.
원로방은 55세 이상이면 누구나 방문 및 전화로 신청만 하면 배울 수 있다. 모든 과정이 매월 초에 새롭게 시작하기 때문에 월초에 신청하는 것이 수업을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팁. 수강료는 교재비 명목으로 1만원을 찬조받는다.
"컴퓨터는 노인들에게 사고력과 기억력을 높이는 등 치매예방에 특효약이라는 것이 미국 한 대학의 연구결과다. 노후생활을 재미있게 보내는 데 컴퓨터 만한 것이 없다"는 조 회장은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을 우리는 원로(元老)라고 부른다. 원로방의 전통이 50년, 100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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