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허구한 날 지나간 날

강연호(1962~ )

아무도 오지 않는다 허구한 날 내 마음의 공터에는 혼자 놀다

심심해진 햇살 곰곰한 생각에 지쳐 그늘 키우고 기다리는 일 많으면

사람 버리기 십상이라며 귓바퀴에 머물던 바람결 총총히 사라진다

-중략-

내 한번도 같이 놀자고 한 적 없는 세월아, 내가 언제 숨바꼭질 하자 했니?

그것도 모자라서 세월아 왜 나만 술래 되어야 하니?

당신은 일기의 귀퉁이에 '허구한 날'이라는 단어를 써 본 경험이 있나요? 아직 한 번도 '허구한 날'이라고 써본 적이 없다고요? 일기는 숨바꼭질처럼 그날의 기상을 혼자 쫓아가는 자의 마음입니다. 사는 게 허구 같아서, 사라지는 날마다 당신은 일기에 기침 같은 삶을 뱉어놓았어요. 당신도 이 시처럼 아직 세월 속에 있다는 거지요. 같이 놀자고 한 적도 없지만 당신의 공터에 찾아온 세월, 몇 번인가 혼자만 계속 술래가 되어 어리둥절한 당신은 아무도 모르는 그날의 허구가 되었죠. 세월을 제외하면 누가 당신을 함부로 놀다 갈 수 있었겠어요? 하지만 세월 속에 당신이 아직 술래라서 다행입니다. '기다리는 일 많으면 사람 버리기' 쉬운데, 그래도 사람은 기다리는 일 많아야 허구가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사람은 외로우면 고향을 닮아간대요. 술래가 되어 슬퍼질 때 어딘지 모를 고향 냄새 코끝에 문득 스쳐 지나갈 때까지, 우리의 일기는 허구한 날들입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