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경악스러운 국민안전처의 '안전 불감증'

전국을 지진 공포로 몰아넣었던 9·12 경주 지진 때 기상청과 경주시청에 설치된 지진가속도계측기는 먹통이었다. 국민 안전을 책임진 국민안전처와 청와대 등 핵심기관들은 기상청이 거듭 발송한 '긴급 지진 통보' 팩스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모두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들이다. 재난 발생 시 신속하게 파악하고, 조치해야 할 해당 국가 핵심기관들이 재난 대비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전국에 설치된 580대의 계측기 중 이날 측정값을 내지 못한 계측기가 142대에 달했다. 4대 중 1대꼴로 시설물 피해 정도를 측정하는 데 실패했다. 어느 곳보다 지진에 민감한 월성·영광·울진·고리 등 원자력발전소 4곳이 계측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다. 영종대교·광안대교 등 현수교 6곳 중 4곳, 인천대교 등 사장교 45곳 중 26곳의 계측기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대형 재난의 우려가 있는 시설들이 정작 재난 시 기초 측정값조차 내지 못한 것에 할 말을 잃는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 정지 혹은 통행금지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계측에 실패하면 후속 조치가 어려워진다.

재난 대응을 위해 신설된 국민안전처가 기상청이 발송한 긴급 지진 통보 팩스를 받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상청은 내륙에서 규모 3.5 이상 지진이 발생하면 2분 이내에 팩스 등을 통해 주요 정부 기관 등에 '지진 속보'를 전송하게 돼 있다. 그런데 이번 지진 당시 기상청이 모두 4차례에 걸쳐 지진 발생 통보 팩스를 발송했는데 한 차례 이상 받지 못한 기관이 청와대, 국민안전처, 한국수력원자력 등 전체 561개 중 95개에 이르렀다. 대국민 재난 문자발송 업무를 맡은 안전처의 조사분석관실과 지진방재과는 4차례 발송된 팩스를 모두 수신하지 못했다. '팩스 번호에 오류가 있었다'는 핑계를 대지만 기본 연락망 업데이트조차 않고 있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으니 국민들의 근심만 더할 뿐이다.

국민안전처는 각종 자체 평가에서 지진 대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 시 피해 정도와 위험도를 분석하는 데 핵심 기초 자료가 될 계측 장비조차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해 왔다면 입을 닫을 일이다. 긴급 지진 통보를 받을 팩스 번호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은 직무를 유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세월호 사건으로 생긴 국민안전처를 두고 무용론까지 나온다. 국민안전처는 제 살길을 위해서라도 본연의 임무부터 확인하고, 또 확인할 일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