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이광수'개척자'와 노벨상

1917년 11월 10일
1917년 11월 10일 '매일신보'에 연재된 '개척자' 1회.

이광수의 '개척자'(1917)는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첫 근대소설이다. 그런데 '성재'라는 이름을 지닌 이 과학자의 행태가 예사롭지 않다. 성재는 동경공업고등학교에 유학한 엘리트 과학자로 매일 오후 4시 동생과 잠시 여담을 즐기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화학실험에 퍼붓는다.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서 처자식을 처가에 보내두고, 교수 초빙 제의도 사양한 채 7년째 연구에만 매진하고 있다. 그러던 중 실험비용 때문에 집까지 차압당하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게다가 실험비용 마련을 위해 여동생에게 어느 부자와의 결혼을 강요해 결국 이 여동생도 자살을 감행하고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개척자'에서 과학은 한 인간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이루려는 절대적 가치로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이처럼 중요한데도 과학 실험의 실체가 소설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소설이 끝나는 시점에도 성재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수행하고자 한 실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되지 않는다. 소설 속, 실험 과정 묘사라는 것이 기껏해야 "황색 액체와 흰색 액체를 섞으니 수증기가 발생한다"는 식의 초등학교 저학년 과학 지식 수준에 불과함을 고려할 때, 실험의 실체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에 비해서 주인공 성재가 내건 실험 목적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인류 발전에 대한 공헌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해도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조차 거기에는 없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실험에 성공하면 발명특허를 받아 큰 공장을 지어 돈을 버는 것이다. 조선의 근대화와 조선의 자립을 부르짖던 민족 지도자 이광수의 소설에서 왜 이런 난센스가 발생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일본 근대를 지배한 '과학입국'의 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이광수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 한문교육을 받다가 10대 중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이광수였던 만큼, 근대적 초등교육을 통한 과학 지식의 습득 기회를 얻지 못했음은 분명한 일이다. 이런 이광수가 '과학'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나라를 세우는 힘이 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 힘들었던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과학'과 '입국' 간의 연관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으니, 과학의 목적이 '부자 되기'와 같은 개인적 욕망으로 연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1910년대 조선의 현실에서 화학 연구 같은 기초과학이 소용에 닿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1920년대 중반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기까지 몇몇 전문학교가 전부였던 조선의 현실을 돌아볼 때 독립운동을 위한 '폭탄 제조' 외에는 화학은 어디에도 써먹을 데가 없는 불필요한 지식이었다. 이처럼 과학의 필요성이 주창되기는 했지만 한낱 관념적인 구호일 뿐 과학에 대한 인식은 물론, 실질적인 기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 현실이 바로 소설 '개척자'의 난센스를 만들어낸 원인이었다.

일본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진 바로 그날 우리나라 15개 대학 809명의 의대생이 故(고)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와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광수의 '개척자'가 발표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 젊은 과학도가 자신의 열정과 능력을 연구에 퍼부을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여건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과학연구가 실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인식하면 기초과학은 죽고 만다"거나, "사회 전체가 대학을 지탱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지 않으면 과학자가 자랄 수 없다"라고 한 노벨상 수상자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의 말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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