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자신의 행위나 말이 구설에 오를 경우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동원하는 수단은 변명이다. 사실관계 해명을 통해 자기를 보호하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 본능이다. 도저히 변명할 길이 없는 '변명무로'(辨明無路) 상황이 되면 대부분 아예 입을 닫거나 사과하는 쪽을 선택한다.
물론 오해를 가라앉히는 타당한 해명도 있다. 하지만 대개 변명은 구실이나 탁언(託言'핑계대는 말)으로 끝날 때가 많다. 우선 위기를 모면하려는 순간적인 판단이 일을 더 그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 큰 물의를 일으켜 검찰에 불려나가는 사람들이 언론의 소감 질문에 흔히 쓰는 모범 답안이 있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멘트다. 일일이 답변하기 곤란하거나 말해봤자 '뻔한 변명'이라는 점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께 워싱턴포스트가 2005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와 한 연예 매체의 편집장이 주고받은 대화를 담은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파일에는 여성 특정 신체 부위를 둘러싼 음담패설과 유부녀를 유혹한 경험담 등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이 담겨 있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성명을 내고 "누군가 내 말에 상처받았다면 사과한다"면서 "탈의실에서 흔히 주고받는 농담"이니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변명했다.
그동안 트럼프는 온갖 막말 논란에도 거의 사과를 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둘러대며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 녹취록이 공개되자 8일 즉각 사과했다. 대통령 선거인단 선출일을 불과 30일 앞둔 시점이라 막 나가던 천하의 트럼프도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현재 우리 국회의 국정감사도 추궁과 변명으로 뜨겁다. 여직원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소속 사무관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해명이 큰 논란을 부르고 있다. 금융위는 당초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고 거짓 해명을 했다. 그러다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며 또 말을 바꿨다. 제 식구 감싸기 하다 계속 혀만 꼬이는 꼴이다.
국감 증인 출석까지 거론된 김제동의 과거 '영창 개그'도 뒷맛이 쓰다.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는 변명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국회에 나가면 (내 말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발언은 조금 '오버'한 느낌이다. 거짓말에 대한 탁언이기 때문이다. 농담도 정색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보다 못한 게 이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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