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학기말 시즌인 6월과 12월은 대학교수에게 무척 괴로운 달이다. 왜냐하면 학점 이의 신청이라는 이름 하에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점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는데, 그 요구가 대부분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황당한 학점 인상 요구의 근거로 창업을 들고 나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생이 창업을 했고, 현재 회사의 연매출이 수억원에 이르는 성공적인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었으니 학점을 올려주면 안 되겠느냐 하는 식이다.
아마 이러한 일은 요즘과 같은 시류에 자주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청년창업이라는 화두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고, 특히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청년이라고 하면 현재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학업에 힘써야 하는 시기에 있는 젊은이들이 연상된다. 적어도 필자는 청년창업을 무분별하게 유도하고 창업을 한 몇몇 대학생들만을 우수하게 묘사하여 학생을 교실 밖으로 이탈하게 만드는 일은 일종의 사회적 선동이라 생각한다.
국내외의 성공한 청년창업 사례는 우리 젊은이들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니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의 일부 대학생들의 성공 스토리가 지켜져야 하는 대학 강의실의 본질적 가치에 왜곡을 가져온다면 나는 그것을 쉽게 수용하기 힘들다. 청년창업의 가치가 아무리 빛난다 하더라도 최소한 거쳐야 할 교육과정과 그에 따른 기본적 소양을 쌓는 절차를 생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의 기능은 단순한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 청년들이 사회에 발을 디디기 전에 습득해야 할 인성과 윤리의식 그리고 공정성 및 진정성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교수를 통해 강의실에서 주입되기보다 학생으로서의 정상적 활동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체득된다. 자신이 공부한 만큼의 결과로 부여되는 학점은 동료들과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산물임을 자인하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공평성을 경험하고 인정하는 태도는 대학이 가르치는 값진 교육 과정 중의 하나이다.
물론 청년창업은 이제 대학이 안고 가야 할 회피할 수 없는 일부분이다. 진정한 대학생들의 청년창업은 선동적인 창업이 아닌 지식기반형 기술창업이 되어야 마땅하다. 지식이나 기술을 창업의 기반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무르익어야 한다. 대학은 강의실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무르익고 확립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대학 강의의 핵심은 바로 다름 아닌 교과서이다.
기술창업이나 산학협력을 얘기하면서 교과서를 거론하는 것이 우습게 들릴지도 모른다. 창업이나 산학협력은 선도적인 것이고 교과서는 케케묵은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학의 교과서야말로 지난 세월 수없이 많은 연구자들이 쌓아 놓은 지식의 결정체이다. 창업과 산학협력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무수한 지식기반적 학술연구논문들이 여러 사람을 거쳐 검증된 다음 교과서에 실린다. 대학에서 이러한 교과서를 외면하면서 창업을 외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힘들게 선택한 대학의 전공과목을 배우는 교과서를 복사하거나 빌리지 말고, 제 돈 주고 사서 공부하고 보관하라고 요청한다. 사실 학생들은 교과서를 그저 시험이 출제되니까 공부해서 학점 따는 매개체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누구는 대학 교과서를 렌탈해 주는 사업을 창업했다는데,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청년창업, 가슴 설레는 말이다. 그러나 그 부푼 꿈을 펼칠 시기는 좀 더 저울질해야 하고, 창업이 선동적이거나 현실회피적 혹은 스펙쌓기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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