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살아남은 자의 고백

지난주 일요일 오후 상주에서 대구로 들어오는 내리막길에서 사고가 났다. 목격자에 따르면 도로표지판을 들이받고 가드레일에 부딪힌 다음 옆 차로에서 달리던 차와 추돌하고 갓길에서 멈추었다고 한다. 머리를 부딪친 탓인지 사고 당시 정황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저 깨어났더니 에어백이 터져 있고 차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는 것뿐. 그래서인지 119에 실려 가는 동안에도 이게 실제상황인지 분간이 안 갔다. 응급실에 이송되어 각종 검사를 받고 링거를 꽂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골절이나 내부출혈은 없었지만, 큰 사고였으니만큼 며칠간 입원을 하게 됐다. 친척들부터 친구들까지 병실을 다녀갔다. 그리고 그들에겐 어김없이 사고 경위를 재탕하여 이야기했다. 폐차는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아 정말이지 다행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남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이야기할수록, 살아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살아남았다는 느낌은 반대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같은 도로에서 사고가 나도 구조 대상이기보다는 처리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그들, 야생동물들의 교통사고도 그중 하나다. 누구도 원치 않지만, 누구도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지 않는 사고, 그래서 늘 일어나는 사고 말이다.

현재 고속도로에서만 연간 수만, 수십만 건의 로드킬이 발생하며 한 해 30만 마리의 야생동물이 도로에서 숨지고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 건설 주체인 '한국도로공사'의 발표에서는 3천여 건으로 보도된다. '인간'이라는 포유동물의 빠른 이동을 위해 고안된 '도로'에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생명들의 종과 수는 헤아릴 수 없다. 그 실상은 밝혀지지 않거나 은폐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황윤 감독, 2008)는 로드킬의 원인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사고 장소를 조사한 팀이 그 위치를 지도에 빨간 점으로 표시하자 도로를 따라 붉은 띠가 만들어진다. 사고는 시스템의 빈틈에서 발생한다는데, 이쯤 되면 애초에 시스템이 없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일단 만들고 보는 식으로 길이 나고 또 다른 길이 나고, 또 난다. 온 땅을 거미줄처럼 뒤덮은 무자비한 도로 위에서 야생동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내가 살아남은 건 우연이다. 누구 말마따나 조상님 덕일 수도 있고, 부모님의 기도 덕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선 인간으로 태어나 운전대를 잡았기에 훨씬 생존의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쥘 수 있는 운전대는 비단 자동차만이 아니다.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준비와 사후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살아남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보다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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