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동네 으뜸 의사] 권규호 예천권병원 병원장

"郡 단위 병원은 존재 자체가 지역 기여"

권규호 원장=1970년 예천 출생, 서울 상문고
권규호 원장=1970년 예천 출생, 서울 상문고'고려대 의과대학원 박사. 고려대 교우회 상임이사. 정형외과 전문의. 예천권병원 병원장. 예천군체육회 부회장. 경북테니스협회 부회장. 예천군육상연맹 부회장. 예천군골프협회 부회장. 예천군 의료급여심의위원. 경북 건강행복추진단 응급의료분과위원. 예천군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위원

◆"촌놈은 죽어야 되냐"던 아버지

권 병원장이 고향 예천으로 돌아온 건 지난 2000년. 정형외과 전문의로 모교에서 임상강사로 근무하고 있던 때였다. 당시 병원은 1995년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초빙원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서울을 뒤로하고 '촌'으로 올 때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평생 가족과 떨어져 지낸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구나!' 하는 아쉬움은 들었죠. 그래도 아버지는 항상 '촌놈은 죽어야 되냐'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경북 북부 지역에서 전문의로는 처음 개원을 했고, 내시경도 처음 도입했던 이유였고요."

따지고 보면 그는 벌써 3대(代)째 의사다. 권 병원장의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한 의사였다. "둘째 아이도 인체와 화학을 좋아하는데, 의과대에 갈진 모르겠어요. 지금은 게임만 좋아해서 프로게이머가 될지도 몰라요. 하하."

권 병원장의 원래 꿈은 스포츠 매니지먼트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의과대를 진학했고, 아버지가 원했던 정형외과로 전문과목도 선택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게 된 것도 가족회의에서의 결정이었다. 다행히 당시 교제하던 아내는 흔쾌히 그를 따라나섰다.

그래도 젊은 병원장에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경황이 없었어요. 환자들의 패턴이 서울과 달라서 공부도 필요했고. 병원 운영도 맡아야 했고요. 외부에서는 자꾸 각종 모임에 나오라고 성화였고. 혼란스러웠어요. 지금이야 다 적응이 됐죠."

그는 "이곳엔 대도시와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대도시에서는 병원급을 운영해도 동네에서 아무도 몰라요. 여기는 보람이 있어요. 다들 알아보니까 잘해주고. 정감이 있는 느낌이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그에게 진료 원칙은 뚜렷하다. 소위 '돈 되는' 비급여 진료는 되도록 권하지 않는다. 그는 "의사는 부모나 가족에게도 할 수 있는 시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가 높으신 노인이 다치면 가족들은 수술이 위험할까 봐 꺼리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가족들을 설득해요. '우리 할머니 같으면 바로 수술합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 진심을 알아줍니다. 수술 받고 걸어나가는 환자를 보면 정말 보람을 느끼죠."

◆"지역민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권 병원장은 "군 단위에는 다양한 진료과목이 있는 병원의 존재 자체가 지역 기여"라고 했다. 월평균 분만 건수가 10건이 조금 넘는 산부인과를 유지하고, 늦은 밤 응급수술 때문에 집에서 불려나와도 응급실을 운영하는 이유다. "예천에는 가난한 다문화가정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원정분만을 하긴 어렵잖아요. 중년 이후 여성들도 부인과 질환을 치료할 곳이 필요합니다."

응급의료센터도 마찬가지다. 월평균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800여 명, 1년에 150여 명은 닥터헬기에 태워 큰 병원으로 보낸다. "응급환자, 돈 안 됩니다. 그래도 응급실은 있어야 합니다. 응급실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핵심 사업입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권 병원장은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가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분야는 체육이다. 특히 테니스에 관심이 많다. 그는 예천군체육회 부회장과 예천군테니스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경북도테니스협회 부회장, 예천군육상연맹'골프협회 부회장도 그의 몫이다.

권 병원장은 앞으로 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들 생각이다. 또 의료 서비스와 주거 환경이 어우러진 실버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꿈도 키우고 있다. 그는 "주민들에게 부채가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에 환자 수가 2배 가까이 늘었어요. 병원 문을 닫을지 모르니 우리가 가줘야 한다는 주민들의 공감대가 있었대요." 병원을 향한 주민들의 애정에 빚을 진 셈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에게 포즈를 부탁했다. 대뜸 옆에 있던 인체골격모형의 팔짱을 낀다. 감춰뒀던 장난기가 발동한 듯했다. 순간 진료실 안에 웃음소리가 번졌다. 아버지의 '전설'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부담감, 시골 병원을 이끄는 의사로서의 사명감, 자신을 향한 지역민들의 시선을 내려놓는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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