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낭 메고 세계 속으로] 미얀마의 고도 바간

규모 6.8 강진에 무너져 내린 '세계 3대 불교 유적'

지난 8월 24일 미얀마의 고도 바간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술래마니 사원.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며 내부에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작은 사진은 지진 피해를 입기 전 술래마니 사원.
넓은 정원과 이라와디강을 옆에 낀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로즈가든 식당.
지난 8월 24일 미얀마의 고도 바간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술래마니 사원.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며 내부에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작은 사진은 지진 피해를 입기 전 술래마니 사원.
넓은 정원과 이라와디강을 옆에 낀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로즈가든 식당.

지난 9월 우리나라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전국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지진이 계속되어 국민들의 지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앞서 미얀마의 고도 바간에서도 지난 8월 강진이 강타해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지난 8월 24일,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지어진 세계적인 불교 유적들이 있는 미얀마의 고도 바간에서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했다. 바간은 이번 지진으로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불탑과 사원들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1975년에도 규모 8의 대지진이 일어나 유적지 거의 절반이 파괴되어 아직도 복구되지 못한 곳들이 많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추석 연휴 기간 형제들 부부가 함께 바간 여행 계획을 잡아 두었는데 8월의 지진 소식을 들으니 무척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공 티켓과 현지 호텔 등 일부 편의시설을 예약해둔 상태로 취소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얀마 양곤에 거주하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보았으나 그저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막연한 이야기만 전해올 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적인 불교 유적지가 지진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안전에 대한 확답을 뒤로하고 일단 여행길에 올랐다. 미얀마 최대도시인 양곤서 출발한 쌍발엔진의 프로펠러 비행기는 우중인데도 흔들림 없이 바간 낭우공항에 사뿐히 내렸다. 바간은 4번째 방문이지만 올 때마다 푸근한 고향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중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화려함과 복잡함이,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두르는 웅장하지만 덩그런 하나의 건축물인 데 비해, 바간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건축물들을 하늘에서 여기저기 뿌려 놓은 듯한 정겨운 모습이다. 그리고 순수한 현지인들의 모습과 저렴한 물가는 여행자들에게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바간 낭우공항에 도착하면 외국인은 반드시 바간 유적지 입장료를 공항에서 미화 20달러나 미얀마 화폐 2만5천짯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과거에는 바간으로 가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아예 항공 티켓에 입장료를 포함시킨 적도 있었다. 만약 입장권 없이 돌아다니다가 현지 감시원에게 들키면 비싼 벌금을 물어야 한다.

공항서 승합차 한 대와 승용차 한 대, 모두 2대로 종일 관광하는 조건으로 200달러에서 시작한 흥정은 105달러로 양쪽 모두 만족하는 계약을 했다. 운전사인 30대 초반의 묘라는 청년은 어눌한 영어로 바간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을 하지만 고장난 라디오처럼 꺼질 줄 모른다.

먼저 쉐지곤 파고다를 찾았다.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를 먼저 본 후라면 규모나 화려함에서 다소 흥미가 떨어질 수는 있으나, 바간 유적지 중 제1호로 지정된 곳으로 바간서 가장 큰 사원이다. 부처님의 머리뼈와 앞니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성지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다는 술래마니 사원에서는 관광객들의 접근을 막고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며 내부에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아침 일찍 조용한 시간에 다시 찾아 관리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너진 사원과 보수공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앞면보다 뒷면이 훨씬 많이 파괴되어 보수를 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여행이란 현지 그대로인 모습을 마음에 담아 오는 것.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면 그 모습조차 같이 느끼고 슬퍼해 줄 수 있는 것이 여행의 한 부분이 아닐까.

점심을 먹기 위해 로즈가든으로 갔다. 이 식당은 필자가 올 때마다 꼭 한 번은 찾는 곳인데, 넓은 정원과 이라와디강을 옆에 끼고 시원하게 펼쳐진 한 폭의 수채화를 피부로 느끼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규모도 크고 제법 고급스럽지만 가격은 착하다. 식사 후 나오는 과일 디저트와 진한 커피로 마무리를 하니 바간을 지배했을 수많은 왕조의 왕들도 부럽지 않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한 제프리티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지은 지 3년 정도 된 호텔은 올드 바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저녁에 돌아다니기도 좋으며 가격 대비 시설도 훌륭하다. 스콜을 피해 잠시 호텔에 머물다 오후 관광에 나섰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좌에 오른 아들이 그 죄를 참회하기 위해 세운 담양마지사원을 찾았다. 육중한 고요함을 주는 미완성 사원으로 크기가 엄청나다. 가장 단단하게 지은 사원으로도 유명한데, 벽돌과 벽돌 사이에 바늘을 꽂아 바늘이 들어가면 공사 담당자를 죽이거나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당시 손목을 잘랐다는 형틀이 보관되어 있다.

바간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뽀빠산으로 갔다. 미얀마 전통신앙인 '낫' 신앙의 본거지라고 한다. 밀림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사원을 지었는데 스리랑카의 작은 시기리아를 연상케 한다. 높이가 1천518m이며 777개의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관광객들을 표적으로 물건을 탈취하려는 원숭이들이 중간중간에 지키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정상에 올라가면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밀림지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간의 모습은 그대로다. 로즈가든 식당의 메뉴판이 고급가죽으로 바뀐 것만 빼면. 여행자 입장에서는 올 때마다 옛 그대로의 바뀌지 않은 모습이 정겹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큰 눈망울의 아이들을 보면 왠지 모를 착잡함과 이름 모를 슬픔이 가슴 한쪽을 헤집고 들어온다. 바간을 떠나는 날. 박차 오르는 비행기 창가에 비치는 모습을 애써 외면한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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