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臣이 의사결정에 영향력 행사해
모든 문민정부서 실세 존재 되풀이
최순실'차은택 국감 증인 막은 비선
대통령 궁지로 몰아 레임덕 만들어
요즘 '비선 측근'이 정가의 화두다. 비선은 비밀리에 운영하는 조직이나 비공식적인 인맥을 일컫는 말이다. 좋게 보면 드러낼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참모를 칭하는 말이지만, 나쁘게 보면 비선은 곧 권력에 기생하는 모리배거나 권력의 끄나풀이다. 국정감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이 비선으로 최순실이니 차은택이니 하는 이름들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야당이 벼르고 벼른 이름들이니 권력의 비선은커녕 만천하에 노출된 실세라 해야 옳다. 그럴 만큼 비선으로 숨어 있지 않고 나름대로 위세를 부린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말하자면 비선으로서의 위치를 잊고 본분을 벗어났던 것이다.
사실 사적인 관계에 있는 조언자(助言者) 그룹도 떳떳하다면 비선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미국 대통령이나 영국 총리에게도 사적 조언자는 있지만 누가 볼세라 백악관을 한밤중에 몰래 들락거리지도 않으며, 다우닝가 10번지를 출입하는 것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않는다. 그들의 조언은 수많은 싱크탱크의 공식적인 조언처럼 필요하면 공개된다. 그러니까 민주적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면 권력은 언제나 투명한 것이다. 명색이 민주정(民主政)에서 누가 비선이니, 실세니 하는 말이 떠도는 것 자체가 공적 시스템보다는 사적인 인연, 그것도 감춰야 되는 비밀스러운 인연이 훨씬 더 중시되는 걸 의미한다. 권력이 사적 조직을 통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선의에 입각하더라도 어찌 부패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겠는가?
솔직히 말해 이런 비선은 모든 문민정부에 존재했다. 주로 권력을 창출하는데 도움을 준 인사들이 '비선 실세' 노릇을 했다. 공개된 실세인 권력의 형이나 아들에 기댄 비선도 있었다. 어쨌든 그들도 권력을 전단(專斷)하는 데 끼어들었다. 무슨 전리품처럼 이권을 챙기고 자리를 나눠 가지고 뒷돈을 챙겼다. 그러다 봉하대군이니 영포대군이니 하는 형들이 감옥에 가고 소통령이니 홍삼 트리오니 하는 아들들도 감옥에 갔다. 목에 힘주고 설쳐대던 비선 실세들도 대부분 감옥에 갔다. 그런데 다시 '비선 측근'이니 하는 말들이 언론에 도배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권력은 비선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런 일들 역시 우리 정치판이 패거리 정치를 하는 데 기인한다. 인기 있는 정치인에게 재빨리 줄을 서야 자리와 이권을 챙길 수 있다 보니 정책으로 뭉친 정파(政派)는 없고 친소(親疎)를 따지는 계파만 있다. 유력한 대선 주자가 만든 무슨 싱크탱크니 네트워크니 하는 모임에 몇백 명의 법조인과 언론인, 천 명이 넘는 교수들이 몰려다니니 그건 세(勢) 과시에 불과했다. 그런 싱크탱크에는 하나같이 대선 때마다 권력을 기웃거리는 싸구려 '지식 소매상'이 넘쳐난다. 그러니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나 해리티지 재단,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처럼 숙성된 정책을 내놓을 리 만무하다. 그저 대중의 입맛에 맞는 포퓰리즘적 정책이나 급조해낼 뿐이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면 청와대 참모가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다.
그래도 그들은 나은 편이다. 적어도 그들의 이름은 공개되고 이력과 행적은 언론의 검증을 받으니 말이다. 문제는 정작 비선은 그런 사이비 싱크탱크에도 끼지 못한 권력의 숨은 측근이라는 점이다. 권력의 말벗이 되고 사적인 일을 처리하는 가신(家臣) 같은 존재가 권력의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부인하지 마라. 모든 문민정부에서 그랬다. 그런 '이상한' 측근이 인사권에 개입하고, 괴이한 프로젝트를 꾸며 기업들의 돈을 뜯었다. 종국엔 국민들의 혈세가 쓰였다. 그들은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제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설마 그런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정치판에 거론되는 '비선 측근'들의 행적이 예사롭지 않다. 미르니 K스포츠의 배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얘기부터 광고감독인 차은택이 장차관급 인사에 개입했다거나 대기업 광고를 싹쓸이했다는 의혹들이 주점의 장삼이사들 안줏거리로 떠돈다. 여당은 그들을 국정감사 증인석에 부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겠지만 내가 보기엔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다. 그래서 묻는다. 진짜 비선은 누구인가? 최순실과 차은택을 숨겨서 대통령을 오히려 궁지로 모는 지독히 머리 나쁜 비선 말이다. 그자가 지금 레임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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