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제사와 놀이와 한글

'제사를 놀이로 익히고 배운다. 그것도 한글로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 경북 경산의 유학자 정기연(1877~1952)의 생각이다. 그는 유학이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이 아님을 역설했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죽을 때까지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굳혔다. 고향 경산에서 그는 죽을 때까지 지킬 '우리 것'의 하나로 집집마다 치르는 제사를 들었다. 그러나 제사는 절차가 까다롭고 용어도 어려워 보다 쉽게 익히고 배울 방법이 필요했다.

제사를 지키려면 뭔가 달라져야 했고 어릴 때부터 쉽게 익히고 배우도록 하는 일이 절실했다. 제사를 놀이처럼 익히고 배울 수 있도록 그가 고안한 '습례국'(習禮局)이 탄생한 배경이다. 유교 의례의 창조적 변신이다. 변신은 이어졌다. 바로 한글 사용이다. 그는 놀이 설명과 놀이 도구를 한글로 풀이했다.

네모난 나무판에 22칸을 그린 '습례국'은 '례 익키는 판'이라 했다. 제례(祭禮)를 익히는 판이란 뜻이다. 놀이를 위해 그는 '굴리는 것'이라는, 0~3까지 숫자가 새겨진 육각형의 '전자'(轉子)를 만들었다. 또 제사상에 올리는 22가지 음식 이름이 한글과 한자로 적힌 '베푸는 것'이라는 네모난 작은 22개씩의 '설자'(設子)도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고안했다.

놀이는 윷놀이처럼 꾸몄다. '전자'를 주사위처럼 굴려 나오는 숫자에 따라 22가지 음식이 적힌 '설자'를 습례국 위 22칸에 옮기면 된다. 즉 전자는 윷가락, 설자는 윷말의 역할이다. 윷놀이처럼 습례국 또한 한 명씩 또는 여러 명씩 조를 짜서 편을 갈라 놀이를 할 수 있게 했다. 어느 편이든 22가지 제사 음식을 먼저 차리면 이기도록 했다.

습례국 칸은 실제 제사상과 같아 자연스레 놀면서 제사 음식과 이름, 놓는 자리까지 익히고 배우는 셈이다. 게다가 전자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0'을 두어 후퇴는 없지만 제자리에 머물거나 한 칸 더 가는 상벌이 있는 만큼 긴장감과 재미는 당연하다. 결과에 따라 진 쪽이 이긴 쪽에 음식 등을 대접하는 규칙까지 있으니 기대 효과는 충분했던 셈이다.

한글은 조선 유학에서는 푸대접을 받았다. 지금도 정체불명의 말과 글자로 한글은 서럽지만, 경산의 한 유학자에게 한글은 '우리 것'인 제사를 어릴 때부터 익히고 배우게 하는 데 더없이 좋은 문자였다. 지금도 그의 놀이법 연구가 시작되고 있고 박물관 등에서 잊지 않고 활용한다는 소식이다. 그의 창의적 발상이 그립고 또 다른 한글의 변신이 그립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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