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붕어를 고추장과 함께 끓여
얼큰한 매운탕에 국수 넣으면 완성
'혀가 아닌 추억으로 느끼는 맛'. 누군가 어탕을 이렇게 정의했다. 강을 터전으로 삼았던 우리에게 물고기는 국으로 탕(湯)으로 유용한 식재료였다. 은빛 비늘 퍼덕이는 감성이 '실용화'되는 데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건 우리 몸속에 이미 음식 DNA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탕의 기원은 '천렵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물에 잡힌 피라미, 꺽지, 붕어, 메기를 고추장과 함께 솥에 넣고 끓이면 얼큰한 매운탕이 되는데 여기에 국수를 말면 어탕국수, 수제비를 넣으면 어탕수제비, 밥을 말면 어죽이 되는 것이다.
전국에서 어탕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은 경상남도. 바다와 인접해 해산물이 풍부하고 강, 하천이 발달해 물고기 조달이 쉽기 때문이다. 김해, 산청, 함양 등지에서는 경호강, 낙동강 하류 수계를 배경으로 민물매운탕, 어탕 요리가 발달했다.
3강(낙동강, 금호강, 신천)을 끼고 있는 대구도 어탕, 매운탕 요리는 뒤지지 않는다. 대구의 매운탕(논메기)은 '대구 10미(味)'에 꼽을 정도로 지역 대표 요리로 위상을 지키고 있다. 한때 강창, 화원, 동촌유원지엔 식당들이 성시를 이루며 매운탕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매운탕집이 집단 상가를 이룰 정도로 민물요리 하드웨어가 탄탄했지만 대구에서 어탕의 출발은 타지에 비해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대구에 어탕국수 시대를 연 건 팔공산 덕곡동 '뚜레박어탕'. 거창의 한 어탕집에서 국물내기, 고기 선별, 잡내 잡기 등 모든 비법을 전수받은 권춘화(54) 씨가 1997년 팔공산 자락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대구에서 어탕이 늦은 것은 선짓국, 육개장, 민물매운탕 등 비슷한 음식들이 워낙 강세를 띠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은 말(馬)이 살찌지만, 강가 물고기의 살이 오르는 계절이기도 하다. 한로(寒露) 절기를 맞아 지역 유명 어탕집을 돌아보았다.
◆동구 덕곡동 '뚜레박어탕'
#대구에 어탕국수를 알린 '원조 집'
대구에서 어탕국수 역사를 논할 때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집이다. 대구에 선짓국, 매운탕이 득세하던 시절 권춘화 씨는 타지에서 조리법을 배워와 친정어머니 박조분(79) 여사와 함께 밀가루 반죽을 밀고 뼈를 바르며 대구에 어탕을 알렸다. 도심과 떨어진 외곽지대였지만 독특한 풍미로 시중 맛객들을 산속으로 불러들였다.
20년째 한자리를 지키며 옛 방식대로 조리를 해온 덕에 고정 단골들이 많다. 10년 단골은 단골 축에도 못 낀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요리에 천연 제피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 제피는 뛰어난 약 성분으로 건강에 도움도 되지만 잡내를 잡아주는 데도 특효. 물고기 재료는 붕어, 메기, 미꾸라지, 잡어.
▷주요 메뉴: 어탕국수, 수제비, 소면, 밥 7천원
▷주소: 대구 동구 덕곡동 744-2번지 ▷전화번호: 053)985-5644
◆수성구 범어동 '착한어탕'
#붕어만 넣어 담백하고 얼큰한 맛
원조 뚜레박어탕에 이어 대구 어탕의 2세대 계보를 이어받은 집이다. 도심 어탕국수 대중화를 논할 때 김군자(61) 씨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될 정도. 착한어탕의 특징은 붕어를 단일 재료로 쓴다는 점. 다른 식당에서 붕어를 쓰면 단내가 많이 난다고 기피하는 점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레시피다. 붕어 특유의 잡내를 완벽하게 잡아낸 것도 착한어탕의 1급 비밀. 지역에선 붕어 조달이 어려워 자연산 붕어를 전라도에서 전량 배달해서 쓴다. 호남산이 담백한 맛이 나고 국물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단가가 만만치 않고 운송비도 적지 않지만 고객을 위한 서비스로 여기고 15년 넘게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배추, 부추, 깻잎을 넉넉히 넣고 끓인 얼큰한 국물은 술꾼들 해장으로 그만이다.
▷주요 메뉴: 어탕해장국, 수제비, 국수 7천원
▷주소: 대구 수성구 범어동 805-120 ▷전화번호: 053)767-9288
◆북구 산격동 유통단지 '어탕원조'
#30㎝ 넘는 붕어 사용해 몸에도 최고
유통단지 산업용재관 근처 후미진 골목에 위치해 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어렵게 집을 찾아 들어가니 영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전 11시가 겨우 넘었는데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고 11시 30분쯤 되니 만석이 되었다. 손님 수만 따지고 보면 어탕집 중 최고 '흥행 식당'이 아닌가 한다. 주말에는 500여 명이 몰려든다고 한다. 외식업에 종사하던 오정훈(47) 씨가 5년 전에 점포를 인수해 영업을 시작했다. 어탕 요리에 대한 이해가 빨라 단기간 내 맛집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여기도 재료로 붕어를 쓴다. 강원도 맑은 물에서 잡힌 30㎝ 이상 떡붕어만 고집한다. 맛 외 보양 기능까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4시간 이상 우려낸 육수에 집된장과 고추장을 풀고 끓이면 국물이 완성된다.
▷주요 메뉴: 어탕손수제비, 칼국수, 만두탕, 해장국 7천원
▷주소: 대구 북구 산격동 451번지 ▷전화번호: 053)381-9500
◆중구 동인동 '육동댁 어탕국수'
#붕어 없이 메기·미꾸라지 등 넣어
경산시 용성면 육동에서 시집 온 김희경(58) 씨가 택호(宅號)를 따서 상호를 지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즐겨 먹던 어탕을 도심에서 재현해 보고자 시작한 집. 김 씨 부부는 어탕 맛 개발을 위해 2년 동안 극성(?)을 부렸다. 선산, 무주, 산청, 거창 등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
육동댁의 주요 재료는 메기, 미꾸라지, 꺽지, 모래무지. 요즘 자연산 구하기가 힘들어 산청 경호강, 청도 운문천서 거래선을 확보하고 있다. 다른 집과 달리 김 씨는 붕어를 넣지 않는다. 단맛이 많이 나 민물고기 특유의 맛과 향을 반감시킨다는 판단에서다.
TV에도 소개된 적이 있고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얼큰한 국물이 당길 때 도심에서 뚝딱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 있다.
▷주요 메뉴: 어탕국수, 수제비, 국밥 6천원
▷주소: 대구시 중구 동인동 1가 226-13 ▷전화번호: 053)427-9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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