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경구는 강은희(52)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딱 맞는 말이다.
대학 졸업 뒤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던 그는 남편 사업 확장에 참여했다가 쫄딱 망했다. 살던 집은 물론 친정과 시댁조차 빚더미에 몰리게 했다. 하지만 좌절할 수 없었다.
쌀쌀한 늦가을, 네 살배기와 100일 된 갓난아기를 안은 채 단돈 20만원으로 단칸방을 구하기 위해 헤맸다. 어렵사리 일자리도 구했다. 한 달 월급을 받아 전(前) 직원 퇴직금을 갚고, 다음 달 월급을 받아 다른 직원 퇴직금을 갚는 힘겨운 생활을 되풀이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IT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으며 경쟁력을 키웠다. 그리고 그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재기했다. 그는 IT여성기업인협회장까지 올랐다. IT기업인에서 국회의원으로, 다시 장관으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하고, '유약겸하'(柔弱謙下'부드럽고 유연하며 겸손하게 낮추다)하겠다"고 말했다.
◆눈물의 회초리 들다
강 장관에게 교직은 천직이었다. 과학을 좋아해 사범대 물리교육학과를 갔고, 아이들을 좋아해 교사가 됐다. 패기와 열정이 넘쳤다. 학생들은 동생이자, 친구이자, 제자였다.
1987년 봉화의 산골짜기 학교에 부임했다. 소천중고에서는 실내화가 없어 맨발로 다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밥을 못 먹어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우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4월 고3 지구과학 수업시간이었다.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한 학생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깨우면서 주의를 주자, 그 학생은 "대학 안 갈 것인데, 왜 간섭을 하느냐"고 했다. 눈에 불이 번쩍 났다.
학생들 모두 종아리를 동동 걷게 했다. 그리고 성심껏 있는 힘을 다해 5대씩 때렸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러면 이게 마지막 공부잖아. 대학 가는 친구들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지만, 너희는 이게 마지막이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배워야 이 세상에 대처할 수 있다. 너희들이 앞으로 살 수 있는 밑천은 이것밖에 없는데, 왜 공부를 포기하느냐." 진심을 담아 설득했다. 다음 날 몸살이 나서 드러누웠다. 이후 학생들은 그의 수업시간에 절대 졸지 않았다. 대학 가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졸업 후 대학 가지 않겠다던 일부 학생은 전문대를 갔고, 나머지는 취업해서 열심히 일했다.
그는 학생들과 호흡이 잘 맞았다. 정규수업 외에도 남겨서 실험실습도 하고, 과외도 했다. 하루하루 보람이 있었다. 동명중 교사 시절 첫 임신을 했을 때는 한 학부모가 서문시장에서 기저귀 천 한 필을 사 일일이 뜨고 감쳐서 선물로 가져왔다. 그는 자신이 맡았던 중3 졸업식장에 참석하기 위해 출산휴가도 1달 반만 쓰고 학교로 돌아왔다.
10여 년 후 소천중고에서 그에게 물리2를 배웠던 한 학생이 중소규모 토목회사 부사장이 돼 찾아왔다.
그 부사장 제자는 "선생님한테 배운 물리 실력으로 회사에서 구조역학 계산을 다했다. 당시 열심히 한 것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고 말했다.
◆사업 망해 단칸방 전전하다
교직 5년 만에 잠시(?) 분필을 놓아야만 했다. 남편이 하던 컴퓨터 관련 사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사업을 성공시켜 놓고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사업은 컴퓨터 판매와 유지보수, 교육, 소프트웨어 개발 등 컴퓨터 관련 종합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업을 확장한 지 3년 만에 크게 망했다. 직원 70여 명의 퇴직금, 컴퓨터 유통과정에서 발행한 수표, 신용보증기금 대출금 등이 빚으로 남았다.
집이 경매에 넘어간 것은 물론이고 시댁과 친정까지 영향이 일파만파였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100일 정도만이었다. 남편은 빚쟁이를 피해 다니는 상황이었고 낙엽이 떨어지는 11월 말, 전'월세를 놓는다고 적힌 전봇대를 누볐다. 4살과 100일 된 아이와 함께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전세 2천만원짜리 한옥을 찾았다. 손에 쥔 현금은 고작 20만원. 무작정 계약부터 했다. 마침 교직 생활하면서 들어둔 5년짜리 보험이 얼마 뒤 만기였다. 200만원. 그러나 전셋값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돈을 들고 가 집주인 부부에게 전세를 월세로 바꿔달라고 사정했다. 식당을 하는 마음씨 좋은 부부는 선뜻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월세는 밑 빠진 독처럼 빠져나갔다. 결국 가까운 지인한테 무이자로 꽤 큰돈을 빌린 뒤에야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강 장관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계기가 된 것은 경북대 전산교육원이었다. 1995년 전산교육원이 생기면서 사업을 통해 컴퓨터에 조예가 있었던 그가 특수계약직으로 총괄팀장을 맡게 된 것이다. 이제 월급 받아서 직원 퇴직금을 비롯해 빚을 조금씩 갚을 수 있게 됐다.
당시 컴퓨터 붐이 일었다. 과학'공학용으로 주로 쓰이던 컴퓨터가 대중용으로 넘어오던 시기였다. 경북대에 '대한민국 World Wide Web' 2회 행사를 유치하고, 인터넷 강좌를 열었다. 행사도, 강좌도 대성황이었다. 전산원에 지리정보시스템(GIS)도 일찍 도입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방문해 경북대 전산교육원에 MS사 프로그램을 무료로 기증받기도 했다. 서울대를 비롯해 유명 대학들이 전산원 운영시스템을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였다.
◆기술로 사람을 이롭게 하다
컴퓨터와 전산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이 분야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1997년 남편과 함께 '사람과 기술'(이후 위니텍)을 공동 창업했다. 재난'비상'위기관리 및 제어시스템 회사였다. 회사 콘셉트는 '기술로 사람을 이롭게 하자'(Technology for Human)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는 이 시스템은 119 관련 30여 개 제품, 재난 관련 20여 개 제품, 교통 관련 제품 등이 있다.
위니텍의 기술은 말 그대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기능을 톡톡히 했다. 그후 승승장구했다. 강 장관은 창업 10여 년 만에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에 올랐다. 이후 국민경제자문회의 등 굵직한 정부 자문기구의 위원으로 맹활약했다.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에도 앞장섰다.
중소기업, 여성, 지방기업인이라는 3박자는 이후 정치권이 그를 끌어들이는 핵심요소가 됐다.
◆여성과 가족, 무한책임을 지다
19대 국회의원으로 청소년과 문화 분야에서 활약을 펼쳤던 그는 올해 1월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는 여성가족부의 주요 현안으로 ▷여성의 '일 가정 양립' ▷부모교육 활성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학교 밖 청소년 문제 등을 꼽았다.
대표적인 정책이 아이돌봄시스템이다. 부모가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대신 아이돌봄이들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는 시스템으로, 정부가 비용의 70%가량을 지원한다. 이 정책은 부모들의 호응을 얻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가족친화인증제'도 효과를 보고 있는 대표적 정책이다. 정부가 CEO 마인드, 육아휴직제 시행 여부, 직장어린이집 설치 여부, 유연근무제 등 기준을 바탕으로 심사해 인증해주는 제도다.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은 금리, 출입국심사 등 총 110개가량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가족친화인증 기업은 직원만족도, 생산성, 이직률 등에서 효과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교육 활성화'는 강 장관이 취임 후 가장 역점을 두고 시행하는 정책이다.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바탕으로, 학대가 발생했거나 진행 중일 경우 신고를 통해 신속히 격리,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그는 "아동학대는 격리, 보호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부모가 부모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의 '건강가정지원센터'가 부모교육을 일부 하고 있지만, 올해부터는 전 생애 주기별로 부모교육을 활성화하자는 데 강 장관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 일환이 '초보 아빠수첩' 제작, 배포다. 여기에는 양육에 대한 세세한 기술과 정보를 만화를 가미해 재미있게 담았다. 이 수첩은 전국 산부인과에 20만 권을 비치했고, 아이 출산 시 보건소에서 나눠주고 있다.
부모교육 동영상도 제작해 이달부터 배포한다. 임신부는 이 동영상을 시청할 경우 50만원어치 아이사랑카드를 받을 수 있다. 육아종합지원센터, 학부모지원센터, 건강가정지원센터,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 300여 개 기관은 물론 올해부터 롯데마트나 이마트 문화강좌에서도 무료로 부모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학교 밖 청소년문제도 김 장관의 큰 관심사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 무료 건강검진에 많은 신경을 쏟고 있다. 그는 "청소년 시기에 단 한 번이라도 건강검진을 받는다면 성인이 되기 전 질병에 노출된 것을 찾아내 무료로 치료함으로써 질병 예방과 치료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도 여성가족부의 몫이다. 현재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서는 일시금 지급과 함께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 월 생활안정자금, 간병비를 비롯해 틀니'휠체어'보청기'주택수리 등 맞춤형 지원도 하고 있다. 특히 올해 일본 정부 출연금으로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의 운영이 주요 현안이다.
◇강은희 장관은
▷1964년 대구시 북구 침산동 출생
▷대구 칠성초'효성여중'효성여고 졸업
▷경북대 물리교육학과 졸업
▷계명대 컴퓨터공학 석사
▷대구 원화여고'경북 소천중고'동명중 교사
▷위니텍 대표이사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
▷국민경제자문회의'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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