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경월(大慶越) 500년

'만국이 뭍길 바닷길 험한 길 넘어온 이날, 동시에 밝은 빛으로 나아오도다/ 한 형제로서 사해가 고르니, 담소하는 이곳이 곧 나의 고향일세/ 새로 알게 된 즐거움을 너무도 기뻐했는데, 이별의 슬픔 길어짐을 어이 견디랴.'

1460년 조선의 사신인 대구 사람 서거정(徐居正)이 당시 안남(安南'오늘날 베트남)의 사신으로 명나라 북경 통주관(通州館)에서 만난 양곡(梁鵠)과 헤어짐의 슬픔을 읊은 시다. 두 사람은 해로와 육로를 거쳐 타국 땅에서 만나 시로 속정을 나눴다.

두 사람 전후에도 두 나라의 인연 이야기는 여럿이다. 먼저 이전 경우다. 1136년(이양혼)과 1266년(이용상) 각각 대월(大越'다이 비엣'베트남 옛 국호) 왕자의 고려 귀화에 얽힌 사연과 1308년 대월 학자 막딩찌(莫挺之)가 중국에서 고려 사신과 우정을 나눴고 고려 사신의 초청으로 고려에서 살다 귀국했고 고려에 후손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이후의 두 나라 인연을 전하는 사례는 숱하다. 1597년 이수광도 북경에서 베트남 사신과 만나 글을 주고받았다. 특히 조선인 조완벽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 왜구의 포로로 잡혀간 뒤 상인에 팔려 1604년부터 세 차례나 베트남을 오가며 이수광의 시가 베트남에서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뒷날 조선에 전했다.

이처럼 두 나라의 인연은 오래다. 인적 교류 못지않게 닮은 점도 많다. 우선 한자 사용의 '동문권'(同文圈)이다. 또 불교 유교 도교의 공존을 추구하는 포용적인 소위 '삼교동원'(三敎同源) 문화권이다. 백제와 고구려에 당나라 도독부와 도호부가 설치됐듯이 베트남도 안남도호부가 설치되는 아픔이 있었다.

우리가 한글 창제 전 한자를 빌려 향찰과 이두를 사용한 것처럼 베트남도 한자를 이용한 '쯔놈'이라는 문자 활용 역사가 있다. 조선이 일본에 망하듯 베트남도 프랑스 지배에 시달렸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월남망국사', 베트남에서는 '조선망국사략'이라는 반면교사 책도 나왔다.

두 나라의 닮은꼴과 다른 점은 끝이 없다. 중요한 일은 숱한 역사의 굴곡을 넘어 서로를 위한 좋은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 대구경북과 베트남 사이에 쌓이는 교류의 두께가 더욱 그렇다. 경북과는 새마을운동과 문화엑스포 행사 등을 통해서, 대구와는 경제협력을 다지면서다. 대구경북과 베트남이 이같이 '한 형제'처럼 '사해'를 누비는 '한배'를 타고 동반성장하면 서거정의 옛 소회에 어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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