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척수성 근위축증' 앓는 김연정 양

14세에 몸무게 16kg…두 손만 쓸 수 있어

척수성 근위축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으면서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김연정(가명) 양.
척수성 근위축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으면서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김연정(가명) 양.

지난 7월 어느 새벽,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외출한 김연정(가명'14) 양의 아버지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 직원으로 일하던 연정이의 아버지는 그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연정이의 어머니는 "연정 아빠가 마지막 1주일 동안은 잠을 거의 못 잘 정도로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마지막을 앞둔 순간 연정이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고 어른스러운 연정이는 "아빠를 이해해요"라며 아버지를 달랬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묻어두라'는 문자 한 통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떠난 후 어머니는 연정이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슬픔은 눈물 대신 고통으로 연정이의 몸을 억눌렀다. 장례식 다음 날부터 연정이는 갑자기 "무섭다"면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토하기만 하다가 결국 탈수증세로 응급실 신세를 졌다. 그날부터 연정이는 식이장애를 앓고 있다. 석 달 가까이 수액을 달고 살면서 하루에 두 번씩 죽만 조금씩 먹고 있다. 연정이 엄마가 말했다. "어제는 계란 프라이 한 숟가락을 더 먹였는데 어김없이 몸이 거부하더라고요. 연정이는 어떻게든 삼켜보려고 눈이 벌게지도록 참는데 결국 토해냈어요."

◆연정이의 노력은 어머니의 자랑

연정이는 원래 건강이 좋지 않다. 태어나서부터 발달이 느렸던 연정이는 여섯 살에 '척수성 근위축'이라는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근육이 위축되면서 점차 사라지는 병이다. 자라면서 근육은 계속 빠졌고 현재 몸무게는 네 살 수준인 16㎏에 불과하다. 다리 근육 위축이 많이 진행됐고, 척추가 휘는 척추측만증도 심해 물리치료로 겨우 버티고 있다. 완치는 불가능한 상황. 다만 악화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게 전부다.

열 네 살 연정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두 손뿐이지만 연정이는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으뜸이다. 휠체어를 타고 일반학교에 다니면서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고 미술에도 소질이 있다. 숟가락도 못 쥐고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연정이가 글씨를 쓸 수 있도록 그림연습을 시켰던 것이 지금은 지점토로 미니어처를 만드는 수준까지 올랐다. 뭐든 남들보다 두 세 배씩 공을 들여 이뤄내는 연정이는 어머니의 자랑이다. "호흡도 잘 못하는 애가 오카리나 불려고 풍선 불기 연습부터 시작해서 몇 개월 만에 연주하는 걸 보면 세상에 못해낼 게 없다는 걸 배워요."

◆어머니의 어깨를 짓누르는 걱정

연정이 어머니에겐 두 가지 걱정이 있다. 한 가지는 2년 전부터 연정이를 괴롭히는 '흡입성 폐렴'이다. 지금 연정이에게는 폐렴이 가장 무서운 병이다. 폐 기능이 나빠진 탓에 잠자는 도중 수면무호흡증이 오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자야 한다. 척추측만증이 심하다 보니 우측 골반마저 빠져 있는 상황이다. 어머니는 "심장도, 폐도 모두 근육이잖아요. 혹시라도 심장까지 이상이 올까 봐 매년 한 번씩 심장 초음파도 찍고 있어요."

연정이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다. 사망보험금은 아파트를 사면서 생긴 빚을 갚는데 모조리 들어갔다. 아버지 생전에도 월급은 생활비와 연정이 병원비로 다달이 들어가 저축도 거의 하지 못했다. 7월 이후 생활비와 병원비는 남은 조의금과 승용차를 판 돈으로 충당했고, 당장 다음 달부터는 이모가 매달 50만원 남짓한 생활비를 보태줘야 생활이 된다.

앞으로 남은 대출금을 갚고 생활비, 병원비를 마련하려면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해야 하지만 어머니는 망설이고 있다. "아빠 돌아가시고 아빠 얘기를 한 번도 안 했던 연정이가 '집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어렵게 입을 떼더라고요. 집은 아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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