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잘나가던 언니들 '화려한 귀환'

여전한 눈빛, 붙잡는 눈길

1990년대에 데뷔해 연예계를 주름잡았던 베테랑 여배우들이 동시에 안방극장에 복귀해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MBC 월화극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최지우, KBS 2TV 수목극 '공항 가는 길'의 김하늘, 또 tvN 금토극 'The K2'에 출연 중인 송윤아가 그 주인공이다. 젊은 후배들이 진을 치고 있는 와중에도 변함없이 매력을 어필하며 당당히 프라임타임 미니시리즈의 여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최근 tvN '굿 와이프'의 여주인공으로 나섰던 전도연과 마찬가지로 농익은 연기력과 매혹적인 외모로 안방극장을 압도하고 있다. 여성미를 과시하며 멜로 연기를 해내는가 하면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리스마를 드러내기도 한다. 세월의 흔적까지 표정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며 자연스러운 매력으로 시청자를 홀리고 있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 최지우

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한 여자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법대 졸업 후 사법시험에 다섯 차례나 떨어져 공부를 포기하고 로펌의 사무장으로 일하게 된 여자 차금주가 주인공이다. 사무장으로 일하던 중 영향력 있는 파파라치 언론사의 대표를 만나게 되면서 뜻밖의 일들을 겪게 된다. 최지우가 맡은 역할이 로펌 사무장 차금주다. 어지간한 형사보다 더 뛰어난 수사력에 튼튼한 체력과 담력까지 갖춘 여장부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만 봐도 알 수 있듯, 극 중 최지우는 드라마가 전개되는 내내 좌충우돌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재판에 필요한 서류가 잔뜩 들어가 있는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철두철미하게 일하고, 주눅 들지 않고 항상 당당히 반대 진영 인물들에 맞선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밝고 경쾌한 최지우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등 멜로 드라마의 초반부에서 주로 보여줬던 귀엽고 발랄한 느낌을 마흔이 넘은 지금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재현하고 있는데, 최지우 본인은 물론이고 연출이 적절한 선을 지키며 안배하고 있어 보는 데 큰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10여 년 전에 어필했던 매력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최지우의 당당함이 보기 좋다.

#'공항 가는 길' 김하늘

'공항 가는 길'은 2012년 로맨틱코미디 '신사의 품격' 이후 한동안 영화 작업에만 매진하던 김하늘이 4년여 만에 선보인 드라마다. 기혼남녀의 만남을 다뤄 '불륜 드라마'라는 선입견에 시달렸던 작품이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된 이후로는 부정적인 반응이 쏙 들어가버렸다. 오히려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공감대를 형성해 폭넓은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남녀 주인공이 그들 각자의 생활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결핍을 묘사하고 감정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해낸 작가의 필력, 그리고 극본을 감성적인 영상으로 재현한 연출의 힘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 드라마에서 김하늘이 맡은 역할은 초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베테랑 스튜어디스 최수아다. 공군 출신의 기장(신성록 분)과 결혼해 10년째 워킹맘으로 살고 있지만, 무심하고 이기적인 남편 때문에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그 와중에 자상한 유부남 서도우(이상윤 분)를 만나게 되면서 흔들리게 된다.

이 드라마에 보여주는 김하늘의 연기는 꽤나 인상적이다. 결혼 후 처음으로 대중에 선보이는 작품인 셈인데, 하필 이 드라마에서 불륜 연기를 하게 됐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결혼이란 선을 넘어선 덕분인지 그전보다 한층 깊이 있는 표정과 감정이 배어 나와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The K2' 송윤아

송윤아의 복귀도 성공적이다. 지난해 방영된 정치 드라마 '어셈블리' 이후 1년여 만에 선보인 드라마 'The K2'에서 악역을 소화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는 용병 출신의 보디가드, 그리고 유력한 대선후보와 그의 아내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음모와 배신, 그리고 멜로가 가미됐으며 강렬하고 스케일 있는 액션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7%대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인기를 얻고 있다.

송윤아가 맡은 역할은 정'재계에 두루 힘을 발휘하는 재벌가의 맏딸 최유진이다. 야심을 가지고 자신의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다. 송윤아는 극 중 친절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도 싸늘하게 돌변하는 이중적인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려 호평을 끌어내고 있다. 도도하고 매력적인 외모로 시선을 집중시키는가 하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화면을 압도하며 드라마의 무게중심 역할을 해내고 있기도 하다. 복잡한 감정변화를 절묘하게 표현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있는데,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미덕이 '좋은 연기'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충분히 몸값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송윤아가 극 중 악역을 맡은 건 1998년 드라마 '미스터 Q' 이후 18년 만이다.

#매력 유지가 인기 비결

관객을 극장까지 불러들여야 하는 영화의 경우 '센 소재'와 '티켓파워가 확실한 배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톱스타급 남자 배우를 중심에 세우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최근 수년에 걸쳐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크게 줄어들고 남자 캐릭터 위주의 대작이나 스릴러, 액션 등이 늘어나 여배우가 스크린에서 메인 캐릭터를 가져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안방극장은 사정이 다르다. 폭넓은 연령대의 불특정 다수를 타깃으로 하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독창적인 소재의 드라마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극 중 캐릭터의 성비를 적절하게 조율해야 풍성한 이야기와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고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가 있다. 무엇보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메인코드로 멜로를 빠트릴 수가 없다는 게 드라마계의 현실이다. 그러니 당연히 여자 캐릭터의 비중, 그리고 여배우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가 여배우들의 치열한 전쟁터가 되는 셈이고 결국 인지도와 실력을 갖춘 배우가 살아남는 게 당연하다. 여배우가 가진 첫 번째 경쟁력은 외적 매력이 될 텐데 그렇다면 젊고 예쁜 이가 승리자가 될 거란 풀이가 나온다. 실제로 젊은 층을 겨냥한 통통 튀는 로맨틱 코미디가 주를 이루던 때에는 20대 여자 스타들이 안방극장에서 활개를 쳤다.

하지만 요즘처럼 드라마 소재의 폭이 광범위해진 시장에서는 말이 달라진다. 굳이 20대 여배우를 쓰지 않아도 무관한 작품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베테랑 여배우의 일자리가 늘게 된 셈이다. 드라마 제작진 입장에서도 잘 관리된 외모에 한층 능숙해진 표현력, 탄탄한 인지도까지 갖춘 여배우와의 동행이니 영화계의 송강호-최민식이 부럽지 않을 만큼 든든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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